한국의 세이비어교회, 부천 선한목자교회 - 말씀 살아내는 삶 현장
리더들, 3년간 서번트 리더십 과정 통과-소명 찾고 발견한 후 ‘사역 공동체’ 시작

청소년 쉼과 자립, 어린이위한 무료 식당 카페, 장애인들과의 대안가정, 방과 후 장애아동과 청소년 보살핌, 그림책방 등 사역 공동체-정부 지원 받으면 통제 불가피하기에 받지 않고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하는 실천의 장-‘삶 살아낸 경험’이 중요

돈이 투입되고 시스템으로 움직이면 인간성과 공동체성이 약해져 -시민들 주체가 되는 자발적 공동체가 바람직  

‘청개구리 식당’. 2022년 새해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청개구리 식당’. 2022년 새해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부천 선한목자교회는 2000년 대 초반, 김명현 목사가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이비어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를 수차례 방문하고, 이정아 사모가 청소년사역인 선한목자사역(Good Shepherd Ministry)에서 훈련받은 후, 이를 모델로 시작했다. 2004년 6월 부천에서 창립예배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역사회 속에서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교회는 별도의 건물이 없이 공간을 대여해 예배드리고 있으며, 공동체 사역의 현장(‘일터’라 부른다)에서 드려지기도 한다. 처음 시작은 경인선 전철 옆, 다세대 주택에서 장애 아동들을 위한 주말활동과 가정폭력으로부터 피신한 아이들을 맞아들여 함께 사는 것이었다. 이후 부천역 부근의 학교 밖 청소년들의 쉼과 자립을 위한 ‘청개구리식당’, 도당동의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식당과 카페인 ‘두루두루’, 청소년, 장애인들과 함께 대안가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샬롬빌리지’, 방과 후 장애아동과 청소년들을 보살피는 ‘쉴터’, 그리고 지난해 시작된 심곡동 어린이들의 식당과 카페인 ‘마루’와,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그림책방 ‘상상놀이터’ 등의 사역공동체가 있다. 

이 사역공동체는 선한목자교회에서 진행하는 3년간의 ‘서번트 리더십’ 훈련을 받은 이들이 소명을 확인하고, 부르심에 응답한 후, 리더가 되어 시작된다. 각각의 공동체는 이러한 리더들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섬김의 일터들이다. 이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무료니 부담 없이 이용한다(‘마루’는 식사비 2천원을 받는다). 

1947년 고든 코스비 목사에 의해 설립된 미국의 세이비어교회는 철저한 입교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통해 150여 명의 교인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사역, 취업 사역, 치유 및 재활 사역, 교육 사역, 중독 사역, 가정 사역 등 7개 분야에 총 45가지의 지역사회를 섬기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가장 급진적인 제자공동체의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1년 예산이 2천만 불(240억)에 달할 정도다. 미국 세이비어교회 규모처럼 아직 크지는 않지만 활약상과 그 역할에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선한목자교회. 한국 토양에서 쉽지 않은 여정일 터인데 어떻게 가능했는지, 한국교회 미래 대안으로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해 김명현 목사를 만나 들어보았다.
 

부천 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
부천 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사회와 지역에서 과연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초창기나 80년대까지도 어떻게 보면 영적인 부분에서뿐 아니라 병원, 학교, 고아원 등 교육이나 복지부분에서도 충분한 역할을 했었는데요. 그런 면에서 보면 선한목자교회의 사역을 보면 기존 전통적인 교회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 한국에서 개척을 시작하기 전에 미국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하고, 몇 달간 사역에 함께 동참하면서 배웠습니다. 전통적 교회가 교회 예배당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이라면 세이비어교회는 실천의 현장(그들은 이곳을 진정한 교회라고 말함)이 있습니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지역 사회의 현장에 들어가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자기 헌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카페나 도서관 목회를 하기도 하고, 복지관, 어린이집, 방과후 교실 등을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들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요.

- 카페목회 같은 경우는 카페 공간을 매개체로 사람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전도한다는 것이지만 결국은 전도가 목적이거나(사실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함), 그것이 목회자의 생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지관, 어린이집, 방과후교실 등은 교회와 분리되어 운영되는 사회복지시설일 뿐이고요. 

사회복지 시설이 되었다는 것은 정부의 인건비 및 운영비를 지원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교회 목회자나 신자 중에서 시설장을 맡게 되더라도 종교성(단순히 예배나 기도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서도)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운영에 있어서 정부나 지자체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저희는 부천시나 정부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원하는 방법과 내용으로 이끌려가야 하기 때문에 교회로서 해야만 하며,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선한목자교회 사역공동체 중 하나인 어린이 식당 카페 ‘마루'.
선한목자교회 사역공동체 중 하나인 어린이 식당 카페 ‘마루'.

예전에는 정부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기 위해 각 종교마다 경쟁을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가봅니다.

- 교단이나 교회가 사회복지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면, 종교 활동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실천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해당 자격증이 있는 전문인들이 투입돼서 시스템으로 운영되지요. 이렇게 사회복지가 확대되다보니 사회복지란 종교가 아닌 정부의 역할이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종교가 사회복지 차원에서는 이제 감당할 역할이 별로 없는 것이네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복지가 확대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습니다. 돈과 시스템으로 움직이다보면 ‘사람’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성과 공동체성이 오히려 상처 입고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발적인 공동체가 형성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데 많이 미흡합니다.

예를 들면 고 박원순 서울 시장이 많은 예산을 들여 지역마다 ‘마을 만들기’운동을 활성화시켰지만 ‘예산’이 끊겨버리자 많은 공동체들이 자생력을 잃고 사라져버렸습니다. 만약 이것을 민간이 주도하고, 이런 자발적 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는 보조 역할자가 되어  지원했다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 유럽에서 공동체는 그렇게, 시민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저희 사역 공동체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라고 부천시나 주변에서 많은 권유가 있었지만 저희는 사양했지요. 공동체란, 특히 이타적인 공동체란 자발적인 헌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식당 마루 벽에 표기돼 있는 문구
어린이 식당 마루 벽에 표기돼 있는 문구

지원이 없는데도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먹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을, 그리고 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정부 지원은 받지 않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자원봉사자, 활동가)나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선한목자교회 사역공동체의 리더들은 교회에서 최소한의 활동비를 균등하게 지급 받습니다. 리더들은 세이비어교회처럼 3년간 서번트 리더십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3년간, 훈련받는 이들은 관상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명을 찾아가는 내적 여정(Inward Journey)과 현장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외적 여정(Outward Journey)을 함께 해야 합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훈련하고 함께 예배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확인한 후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을 때 사역을 시작합니다.


전통적 교회에서 교회의 주요 요소로 꼽는 예배나 교제, 봉사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도’의 삶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세이비어교회도 초창기에 그랬겠지만 선한목자교회도 사역에 있어서 리더들이 사역할 곳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겠네요.

- 그렇습니다. 지금 사역하는 리더들도 자연스럽게 자기의 달란트를 따라 ‘사역 공동체’를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3년간 리더십 훈련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가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공동체 사역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리더십 과정의 중요한 세 가지 훈련 가운데 하나인 ‘기도하는 삶’은 나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기도’란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요청 기도가 대부분인데, 침묵(관상)기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철저히 내려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 정기적으로 하루 3번 기도하고, 예수님의 성육신적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수 있게 하는 영적인 여정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섬기고 헌신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영적인 것을 공급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살아내는 실천을 중요시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찾으려는 사람이 되어 각 사람마다 소명과 달란트를 주셨는데 나에게는 어떤 달란트가 있는지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사역하며 영적 성장을 도모하고, 사랑 안에서 서로 소속되며, 나눔의 사역을 위해 영적인 선물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소명을 나누는 것 역시도 중요합니다.


세이비어교회의 사역이 8-9년 전에 한국에서 많이 회자되고, 목회자들이 미국 현지 교회를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로 관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교회처럼 사역하는 교회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 사실 한국교회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갱신해야 한다며 제자훈련을 강조하며 목회하신 목사님들조차 ‘말’은 했으나 ‘실천’은 하지 못했습니다. 신자들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공동체적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천의 장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그 말만 듣고 구체적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목회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제자도, 공동체적 삶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설교에서도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지역과 사회 속에서 살아낸 경험 있는 목회자를 찾기 힘든 현실입니다. 목회자들은 어쩌면 알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니 그 길을 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지금까지 20여 년 살아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교회의 특성상 목회자는 자신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사회복지나 상담 쪽은 이미 사회적으로 전문화된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적 차원에서, 이 시대를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사역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전처럼 전도를 목적으로 다가가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어렵고 힘들고 소외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식하여 채워줄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 시간, 물질 등을 내어줘야 합니다. 헌신의 삶이지요.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말씀해주십시오.

-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이웃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심히 살펴보고, 그것을 모른 체하지 않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2004년 5월로 기억이 나는데, 제 아내가 초등학생인 아이의 학교에 ‘등굣길 안내’ 봉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한 아이의 행색이 이상해서 선생님께 알아보니 형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집을 방문했어요. 다섯 자매가 알콜중독 엄마와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지방에 계셨구요. 집에는 온갖 쓰레기와 고양이 오물이 뒤엉켜 있었어요. 3명의 자매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아내는 등교 전에 그 집에 들러 아이들을 준비시켜서 등교시키는 일을 했어요. 동시에 학교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연결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했으며, 지방에 있는 아버지가 올라와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지자체를 설득해 수급가정이 되도록 도왔습니다. 만약 시설에 들어간다면 부모와 아이는 물론, 아이들끼리도 분리돼야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아동인권에 대한 유엔에서 결의됨)에 따라 우리는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 초등학생 남매가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없어서 우리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는데, 오빠는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어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자주 훔쳤고, 현장에서 붙잡힌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법적 기관이 아니기에 사회복지기관에 남매에 대한 책임을 떠맡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들에게 예절과 사회적 질서를 핑계로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그들에게 부모가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누가 부모가 되어줄까요? 시설은 가정이 아닙니다. 내 자녀가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당연하듯, 다른 아이들도 가정에서 자라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원가정이 기능을 상실하면, 대안가정을 찾는 대신 사회복지 시설로 보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합니다.   


실천하는 그 현장의 삶을 강조하셨는데, 마더 테레사의 삶이 생각납니다.

-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마더 테레사는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 삶을 말할 때 급진적(radical)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격하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어원은 뿌리, 근원적이라는 뜻입니다.  급진적 삶이란 그리스도인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현장 속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저와 공동체의 리더들은 급진주의자들입니다. 우리는 선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에 미국 세이비어교회나, 목사님이 사역하는 선한목자교회 같은 교회가 많아지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 많은 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런 교회가 올바른 교회며, 따라서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많은 좋은 교회모델 가운데 그저 하나의 모델일 뿐입니다. 어렴풋이나마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 앞서 이런 삶을 살아가는 성도와 목회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들은 어둠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밝혀줄 빛을 찾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소명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그러면 따라나선 사람도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외롭거나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동행하는 현장에서 살아가면서, 자기 개발과 경험을 통한 학습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투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젊은 목회자들이 소명을 찾아 헌신할 수 있도록 기성 교회나 교단이 아낌없이 지원한다면, ‘사회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현장 전문가들이 생길 것이며, 이들은 진정한 교회를 찾아 헤매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다시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실천으로, 제도로서의 사회복지와는 다른 길을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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