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락 목사(서울벧엘교회)-13년간 일, 목회,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던 이유

노동·성직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정립 있어야
기업적 큰 교회 구조, ‘내 양을 알고’ 말씀에 위배
신자 뺏어 내 교회 키우는 것은 ‘마귀의 짓’ 알아야

 

기획/작은(소중한)교회 살리는 이들 ⑥

목회의 소명은 받았지만 아내의 동의를 얻기까지 15년을 기다렸다. 끝끝내 동의를 이끌어내고도 일하던 사업을 그대로 하면서 목회를 시작했다. 일명 자비량 사역. 일하고 목회하면서 그는 12년간 자비량 목회를 하면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배짱있게 목회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현 시대의 목회는 단연 ‘자비량 목회’라고 그는 말한다. 신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있게 설교를 할 수 있고, 잘못된 길을 갈 때도 엄히 경고하고 치리할 수 있다. 그것이 먹히는 이유는 자비량하는 목회자의 무언가에서 나오는 장점인 듯 싶다. 올해 59세, 3년 전부터 일을 쉬고 있으며 조기은퇴하고 또다른 방향의 목회를 하고 싶다고 한다. 서울 벧엘교회 최병락 목사의 얘기다. 그와 나눈 2시간 여 동안의 대화는 자비량사역의 중요성과 함께 한국교회를 향해 쏟아놓는 아픈 이야기, 대안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자비량사역은 쉽지 않아 보인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 제대로 된 인식의 부재라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비량 사역의 실례는 예수님, 바울 등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선교사들의 상당수는 현지에서 일을 하면서 선교활동 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한국 교회는 일을 하면서 목회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지 모르겠다. 일은 신성한 것이다. 하나님이 최초의 노동자 아니셨나. 하나님이 창조를 위해 6일간 일을 하시지 않았나. 그만큼 피조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신 것이다. 아담 역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그에게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셨다. 노동은 타락이 아니고 거룩한 것이다. 목회자가 일을 한다고 그것을 죄악시 하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은 시정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런 시각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목회자 스스로 성직에 대한 개념을 성경적으로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교육해야 한다. 목회하는 것은 성스러운 것이고, 세상 속에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 성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거룩해서 성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받들어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은 성직이고,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성직이 아니라는 이원론적인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 지난한 일이지만 그것이 성경적이다.

이것이 바뀔 때까지라도 신학대학 과목 중 실천신학의 한 분야로 자비량 과목을 개설해 목회자 먼저 신학적 토대를 갖춰야 한다. 한국교회는 청교도신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그들의 직업관과 소명의식은 도외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도 자비량사역이 성경적임을 가르쳐야 한다. 주부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거룩한 일임을, 그래서 어떤 직업을 갖든지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일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우민화 교육이 심한 편이다. 그럴수록 목회하기는 더 쉬울 수 있다. 미신과 공포를 조장하면 전폭적으로 목회자에게 복종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성경대로 제대로 가르치면 목회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목회자와 평신도는 하나님 앞에서 맡은 직분이 다를 뿐 같은 신분인 ‘만인제사장’임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일과 목회, 공부 등 3가지 일을 같이 한 것으로 안다.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세 가지를 하려니 쉽지 않았다. 일찍이 소명을 받았지만 아내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15년을 기다려 45세에 목회를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시기가 사업적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진 때였다.

자비량 목회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예수님이 3년의 공생애를 사시기 위해 30년의 세월도 그에 못지않은 모습으로 생활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2~3년으로는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 예수님이 습관을 따라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는 말씀을 보면 공생애 이전부터의 삶에서 공생애를 시작할 수 있는 터를 다졌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인 신적 권능으로 호화롭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한 집안의 맏아들로서 목수 일을 수행하며 묵묵히 공생애를 준비했던 것이다.

저 또한 신학을 공부한 이후 신학·목회학 석사(실천신학 관계리더십, 자비량)과정을 공부했고, 교육상담학을 하는 등 20년간 사업을 하는 가운데 신학공부를 포함해 13년간 공부를 했다. 신학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도 사업장에서는 사장 역할을 하면서 거래처나 직원들 관계 속에서 목회한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 회사도 또다른 형태의 생활목회다. 똑같은 조건 속의 일터에서 삶으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자비량사역의 어려움일 수 있겠다.”

△여전히 상가건물에서 교회를 하고 계신데, 이유가 있나?
-“예배처소가 없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건축을 해야 하겠지만 이 장소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양적인 허영에 빠져 교회를 짓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우뚝 서가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에 오면 헌금해야 한다는 것은 비신자들도 누구나 다 알 정도로 교육이 돼 있다. 물질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도가 없을 정도인 풍토에서 초점을 건물에 두지 않는 것이다.”

△서울벧엘교회 신자들은 자비량사역에 대해 확실히 교육이 돼 있나? 어떤 신자들이 주로 오는가.
-“전도를 하면서 신자들이 잘 설명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비신자들이 오히려 잘 이해하고, 좋은 반응을 보인다. 특이한 것은 사업이나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타 교회 신자들이 와서 회복하고 가는 사례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될 정도로 극한까지 치달은 이들이 본 교회를 뒤로하고 우리교회로 오곤 한다.

우리 교회를 거쳐 간 신자들, 세례를 준 자들은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교회에서 안수집사나 권사직분을 준 적은 없다. 성숙이 안되면 직분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교회에 간다고 하면 잡지 않고 잘 보낸다. 나는 설교 시간에 농담 식의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을 집사 시절 때부터 용납하지 않았다. 본문을 완전히 소화해 말씀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노력한다.”

△한국교회 미자립교회가 절대 다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목회의 소명을 받은 자라면, 그래서 어렵지만 목회를 시작했다면 자비량사역을 권하고 싶다. 젊은 사역자라면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해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설프게 시작하면 본인은 물론 가정도, 교인도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사명만큼 경제, 가족 등 상황을 철저히 고려해 준비해야 한다.

작은교회라고 열등감을 갖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정의 구성도 대가족, 핵가족이 있지 않는가. 크고 작은 것에 따라 가족이 좋고 나쁠 수는 없다. 오히려 수가 적으면 돌봄의 측면에서 그만큼 더 좋은 것이다. 성경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요 10:14)라는 말씀에서 ‘알다’란 뜻은 단순히 이름 몇 자를 아는 것이 아닌 아픔, 기쁨 등 삶의 전반적인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적 조직으로 운영되는 큰교회와 다른 것이다. 돼지나 소 등 짐승은 기업적 구조로 키울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혼을 기업 다루듯이 다루니까 오늘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비량 목회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명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 형태를 볼 때 소신껏 목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권하고 싶다. 성경의 교회대로 구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을 가진 목회자들이다 보니 처자식 때문에 물질에 얽매여 눈치 보는 형국이 얼마나 많은가. 성도들이 잘못을 해도 겁나서 말을 못하는 목회자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 내에서조차 그렇게 흘러 한 사람 한 사람이 망가지면 교회의 거룩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렇지 않은가. 자비량 목회는 그런 단점을 타개할 수 있다.

일반목회에 비해 자비량목회는 소명 위에 뜨거운 열정,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이 남달라야 한다. 그 대신 평생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소명이 있을 때까지 열정을 불태운다는 생각이면 좋겠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그렇지 않았나.”

△한국교회에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30년 전만 해도 부교역자 부인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 크게 잘못된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직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앞으로 10년이 가면 또 많이 바뀔 것이다.

현재 큰교회로 쏠리는 현상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 현재의 큰교회들 대부분은 전도를 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작은교회에서 간 숫자들이라고 보고들 있지 않나. 그런 것을 안다면 큰교회들이 먼저 그런 현상을 방지하는 노력을 하여 교회는 모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라는 표명과 정책을 펴주면 좋겠다.

미자립교회가 80%에 달하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교회론의 정립과 그것대로 살아낼 수 있는 용단이 필요하다. 작은교회 신자들이 큰 교회로 이동하는 ‘과정’을 도외시하고 무시하여, 타교회 신자 빼서 내 교회를 키우겠다는 잘못된 모습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성경적 과정이 배제된 성공주의는 마귀의 짓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숫자 감소는 그런 측면에서 예견된 일이다. 그러나 숫자 증·감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오히려 거품은 빠져야 한다. 성경적이지 않은 방법으로도 사람은 얼마든지 끌어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거듭난 구원받은 성도들로 만들어 나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많고 적은 것을 두고 뭐라 하지 않으신다. 진실한 자를 찾으신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WCC 한국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에큐메니칼의 성경적 교회운동이라면 지금같은 형태로 준비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대형교회 중심의 WCC 준비측 인사들은 에큐메니칼 정신을 지금이라도 살려야 한다. 진정한 에큐메니칼운동이 되려면 대형화된 교회들을 해체하여, 교회 구조부터라도 모습을 성경적으로 갖추기 위해 분립하고, 어려운 교회에 가서 힘을 보태야 한다. 교회의 기본적인 본질을 외면하고 허세를 떠는 것은 범죄일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목회자들이 자비량사역에 대해 자문을 해오곤 하는데, 기회가 되면 자비량 신학을 토대로 몇 주 과정의 교육을 통해서 자비량사역의 토대를 마련해주어, 기죽지 않은 자신감으로 목회를 하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조기은퇴 하고 ‘영성목회’를 하고 싶다. 산 밑에 쉼터를 마련해서 현실적으로 아무런 제약이 없는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이들, 상담을 받고 싶은 이들을 향한 목회를 하고 싶다. 고단하고 지친 이들을 회복시켜 주님 안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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