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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의 보람 은산교회는 모교회이면서 내가 7년 간 초기 목회를 경험한 교회이기에 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목회자로 다듬어지는 일도 그 곳에서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다. 전도사를 거쳐 목사가 되는 과정을 거쳤고 목회와 치리와 행정까지도 상당 부분 기초를 닦는 경험을 갖게 한 고마운 교회였다.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사역이 시작된 곳도 목회자의 영성도 은산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은산교회에서 교회학교를 거쳐 서울신학교를 졸업했고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는 것에 긍지를 느낄 만큼 시골교회이지만 좋은 교회였다. 카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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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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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도한 부흥회 바울사도는 `해산의 수고'라는 표현을 성도들을 양육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 개인이 성령체험을 통해 영적인 사람으로 바뀌는 것도 해산의 수고를 거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령체험을 원하는 마음이 어떠한 조건으로든지 먼저 일어나야 하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성령충만의 첫 경험을 갖기까지 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수고로운 노력을 통해 분명한 성령과의 연합을 경험하면 천하를 얻은 기쁨과 큰 보화를 얻은 감격과 같은 영적인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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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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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성령 충만의 경험 세 번째 맡은 교회이지만 젊은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목사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그 교회 목회를 더 잊을 수 없다. 은산교회는 시골교회이지만 자리 잡힌 교회요 연조가 있는 교회를 전도사가 목회하였기 때문에 힘에 겨운 느낌을 받았다. 그 뿐 아니라 목회를 통해 교회를 이끌어 가는데도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더 힘든 부분은 다양한 은혜체험과 성령체험 등 많은 것을 요구하는 영적인 성향에 대해 교역자로서 자신의 빈곤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영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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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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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척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목사안수를 받고 담임목사 위임식까지 마치게 되자 은산교회 목회는 더 든든한 분위기가 되었다. 또한 은산면 내에는 10개 리가 있어서 전도구역이 넉넉한 지역이었다. 물론 교회에서 6㎞에서 8㎞가 넘는 동네도 여러 곳이어서 교회출석이 힘든 여건에 있는 곳도 있었지만 전도구역은 넓은 편이었다. 미친 사람도 많이 고치고 중환자도 낫는 표적이 함께 해서 전도나 교회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가 면 단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먼 동네로 심방을 가면 단순한 심방예배가 아니라 그 동네와 그 주변 마을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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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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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안수에 따르는 은혜 내 모교회요 고향교회이기 때문에 정감이 있고 허물이 없는 목회생활이었다. 그런 면에서 목회사역과 교회활동에서 직원들과 어울리는 면이 훨씬 더 부드러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도사로 부임했지만 목사님 같이 예우했고 목회에 대한 신뢰심도 전혀 지장 받지 않았던 것을 지금도 고맙게 여기고 있다. 또한 교회 안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집사님으로 있었지만 나를 대할 때에 깍듯이 “전도사님”, “전도사님” 하면서 경어를 써 줘서 그분들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은산면소재지 동네와 맞닿아 있는 신대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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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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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적인 선물 폐농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만수 씨에게 믿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병이 고침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령의 임재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를 예감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러한 실례였다. 환자가 믿지 않던 사람인데도 신앙의 감동이 함께 함을 느꼈고 기도해주려는 목사나 함께 심방에 참여한 집사까지 무엇인가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이 하나로 묶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우리는 안수기도를 했고 또 통성으로도 기도를 드렸다.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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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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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교회는 이명직 목사님이 규암교회에서 목회할 때 은산에서 세 가정이 출석하고 있었는데 그 가정이 개척의 씨앗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규암교회의 이명직 목사님과 최재은 전도부인이 은산을 왕래하며 심방과 개인전도에 힘써서 교회개척의 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18명 가량의 성도로 증가되어 1914년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석준 전도사를 통해 그 해 8월 1일에 은산교회가 창립되었다. 은산은 무당이 많은 지역이었고 한국에서 3곳밖에 없는 별신제(현재도 지속되고 있음)가 있어서 우상숭배가 심한 지역이었다. 여기에 은산교회가 개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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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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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임지는 하나님이 결정한다 아버지는 몇 개월 간 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은산교회 성도들의 많은 기도를 받으시던 중 그 해 9월 14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때 은산교회 담임 목사님은 홍종현 목사님이셨는데 목사님의 배려와 베푸신 관심은 지금도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성대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꽃상여를 만들고 상여 양쪽 끝에 광목을 길게 매서 그 광목을 성도들이 붙들고 상여 뒤를 따랐는데, 이 장례행렬은 보는 사람들에게 큰 부러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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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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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다통영중앙교회(현 충무중앙교회)는 두 번째 목회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많은 교훈을 얻은 교회였다. 우선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분명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수정교회에서도 마치 수정교회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처럼 보일 만큼 교회를 위한 충성심이나 사명감이 철저한 직원들을 경험했는데, 통영중앙교회는 그 교회대로 통영중앙교회를 위해 세상에 온 사람들처럼 정말 충성되고 헌신적이며 몸과 마음과 물질로 교회를 섬기는 소중한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다. 또 그 교회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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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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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목회지 통영중앙성결교회19160년 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수정교회 목회는 은혜롭게 이루어졌다. 졸업하던 해 7월의 어느 날 전혀 안면이 없는 집사님에게서 전도사님을 꼭 찾아뵙고 싶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약속한 시간인 오후에 그분이 수정교회로 직접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통영중앙성결교회(현 충무중앙성결교회) 집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명함을 내놓았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묻자, 그분이 자세를 고치더니 “너무 갑자기 찾아뵙고 이런 말씀을 꺼내게 되어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하는 말이 “전도사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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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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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회지에서 받은 은혜수정교회는 개척교회였지만 목회와 교회부흥에 대한 원리와 실험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교회였다. 30명에서 40명 정도의 신자가 모이는 교회였지만 교회 구성원이 너무 좋은 분들이어서 은혜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만큼 부담이 없는 교회였다. 교회부흥이나 교회성장, 성도들의 신앙지도 외에는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을 만큼 은혜로운 분위기였다. 신학교 재학중인 전도사인데도 교회 목회를 모두 전도사에게 위임하고 전적으로 협력해 주었던 교회 분위기는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교회부흥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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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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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조직된 학생회 임원 활동신학 수업과 개척교회 목회가 동반된 것은 힘겨운 일이었지만, 목회가 좋고 개척교회라도 교회를 맡았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학교 동료들은 반반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부러워하면서 수고스럽겠지만 좋게 생각했고, 다른 한 편의 친구들은 평생 해야할 목회인데 학생시절부터 교회를 맡아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맡아 목회 하는 것을 참으로 기뻐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물론 학교 공부와 목회에 다 같이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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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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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로 시작한 목회 신학 수업은 신학공부를 위한 이론적인 학습보다 영적인 자기 수련이 더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학문적인 신학공부도 목회자의 지성을 위해 소중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신학 수업 중에 갖추어야 할 영성 개발이었다.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경건 훈련을 통해 경건한 사람으로 자리잡는 것이 우선순위로 느껴졌다. 사명감으로 신학교 생활이 이루어진 탓인지 목회를 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항상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자료수집이나 지하도서관에서 소중한 내용들을 복사해 두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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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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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생활(2)하루는 기숙사 방에서 친구들끼리 신학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토론 중 나는 예지예정을 주장했고 나와 가장 가까웠던 강신찬 목사는 예정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로 양보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다가 말다툼이 되었고, 화가 난 강 목사가 갑자기 슬리퍼로 나를 치면서 “너 잘났다”고 소리쳤다. 그 때 나도 반사적으로 의자를 들어 강 목사에게 던지려하자 친구들이 모두 일어나서 우리를 만류하여 싸움은 끝났지만 감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고등학교를 갓 나온 신학생들의 혈기를 깨닫고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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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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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생활1995년 봄은 내게는 형용할 수 없이 감격스러운 해였다. 그 해가 바로 서울신학대학교의 전신인 서울신학교에 입학한 해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별을 딴 것처럼 기뻤고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 그렇게 반대하던 아버지께서 등록금을 내 손에 쥐어주면서 “서울에 가서 조심하고 건강해야 한다”고 부탁하시던 모습은 정말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다정한 권면이었다. 처음 집을 떠나는 아들이고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하니까 여러모로 걱정이 되어서 하신 말씀이셨다. 좀처럼 말이 없었던 아버지의 이 몇 마디 부탁은 등록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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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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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도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하나님의 종은 반드시 소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 소명은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청각을 통해 하나님의 부름을 꼭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소리 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또 세우시고 인도할 때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본인의 확신이 더 중요하다. 소명을 받지 않고 남의 권유나 권고를 통해 신학교에 입학했을지라도 학생 시절에 소명을 받아야 하고 기회를 놓쳤다면 전도사가 되어서라도 소명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좀 더디기는 하지만 목사가 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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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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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6·25 한국전쟁은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시련중의 시련이었다. 이는 국민이 겪은 고난일 뿐 아니라 한 가정이 겪은 큰 수난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6·25는 나라와 국민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이 때에 교회도 큰 핍박을 받았다. 교회는 해산 되었고 예배당은 공산주의 교육장으로 바뀌어져 청소년들을 모아 공산주의 이론과 김일성과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노래를 매일 가르쳤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표현 그대로 지하교회가 되고 말았다. 비밀이 보장되는 성도들끼리만 이 집 저 집에서 은밀하게 모여 기도회를 갖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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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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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2차 대전을 경험하고 나라를 잃은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6.25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요 4·19와 5·16혁명을 거치며 나라의 시련기를 함께 한 세대였다. 그 중에서도 한국전쟁 때 약 3개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포함한 남한 일부를 북한이 점령한 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에 겪은 동족의 살상은 참으로 무서울 정도였다. 단순히 이념과 사상을 가려 살해하고 보복하는 동족간의 상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사건들이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보복에 보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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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3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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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날 때 따르는 은혜신앙생활 속에서 첫 번째 큰 회개를 통해 거듭나는 경험을 갖는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학생이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반드시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거듭났다는 표현 그대로 다시 지음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분명한 소속감은 물론이고 영적인 사람으로 신앙생활에 대한 모든 은혜가 가능해졌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거듭나는 사건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으로 족하다. 물론 거듭난 후에도 죄 짓고 실수할 수 있지만 발 씻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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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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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통해 열린 기도의 문네게 기도를 시켰던 부장이 그렇게 용서가 안 되었던 것은, 주일날 기도를 부탁한다고 며칠 전에 미리 말하지 않고 기도를 시켰기 때문이었다. 대표기도를 제대로 못했던 나는 그가 지독하게 미울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은 온 종일 내 마음이 불편해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런데 오후 3시경, 그 부장이 미안했던지 내게 사과를 하러 찾아왔다. 그러나 그때도 섭섭한 것은 사과를 하려면 혼자 와야지 주일학교 교사 네 명을 데리고 온 것이다. 나는 “사람을 망신시키고 무엇 하러 왔느냐? 그만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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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6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