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식 표현으로 영웅, 곧 `a Hero'이다. 꿈을 먹고 태어난 인간들은 종종 또는 스스로가 영웅이라고 하는 열망을 품는다. 그러나 근대사회 이후에는 영웅적 인생을 꿈꾸는 이들이 많지 않다. 이는 인위적 권위를 파양시켜 버리는 것을 더 큰 영웅적 행위로 보는 시대의 요구일 것이다. 그러나 신의 시대나 인간의 시대라 할지라도 영웅이 없는 시대는 맛이 없고 멋도 없다.무릇 인간사회는 어느 만큼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멋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인생같은 기개와 멋, 그의 생애 특히 3년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8.26 11:07
-
프랑스가 이슬람 공화국이 될 수도 있다고 2009년 8월 11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되었다. 2050년이면 유럽인 5명중 1명이 이슬람 사람 된다는 영국의 한 일간지 보도를 인용, 조선일보와 같은 날짜에 동아일보가 더 큼지막하게 보도를 하고 나섰다.유럽 향후사의 재미있는 대목이다. 프랑스가 이슬람 공화국이 되고 유럽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혼성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두 종교의 태생적 숙명이 이미 말해주고 있다.더구나 기독교와 이슬람은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의 반동으로 등장한 이슬람의 유일신론과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의 절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8.12 14:34
-
기독교 역사에도 의외의 사태가 있다. 그러나 그때는 기독교답게 아이쿠! 하면서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경우가 많다. 세속인들도 자기 실수로 사고가 터지거나 집안에 재난이 밀어닥치면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독교 교회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예를 들어 AD 325년 니케아 세계 공의회가 열려서 주요 교리와 교회의 전승규례를 확정했으면 기독교는 그 길을 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의 때부터 딴죽을 걸었던 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도 교회를 괴롭히고 있다.당시 아리우스처럼, 내놓고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7.29 11:11
-
한국교회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선물 중 가장 분명한 것은 〈신자 1천만여명〉이다. 그 숫자를 더욱 정직하게 표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1천만명 그 이상의 신자들이 〈대한민국〉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신뢰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현재 240개 나라가 있다. 그러므로 1천만명이면 인구 기준 세계 83번째 국가다.이렇게 생각할 때, 한국교회는 한 나라를 경영할 만큼의 숫자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교회 스스로가 먼저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신자가 많다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시비할 사람들이 있을까? 그러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7.22 09:31
-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오강남 교수가 `도마복음'의 해설서(주석서)를 썼다. 책 제목은 〈또 다른 예수〉다. 도마복음(?) 저자가 성경에 나타난 도마가 맞을까? 도마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4복음서 안에서나 초대교회 전승에서 그의 행적이 비교적 상세히 드러난 인물이다. 그런데 오강남 교수가 해설을 곁들인 `도마복음'서 내용은 도마보다 오히려 비교종교학자이며 불교 쪽으로 기울어 있는 듯한 오 교수의 `오강남 복음'이라 했으면 싶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도마복음'의 내용은 그 절반이 `공관복음'과 겹치고 있다. 이는 도마복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7.08 11:02
-
50여년 전 `세계 기독교회사'(송락원 저)를 만난 이후 곧바로 나는 AD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에서 이단정죄 후 추방당한 네스토리우스(당시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와 AD 610년 아라비아 메카에서 일어난 무함마드(이슬람 창설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그날 이후 나는 기독교 역사의 오랜 연구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네스토리우스와 무함마드를 평생의 과제로 탐구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지금은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제자들이 페르시아 일대와 중앙 아시아 그리고 돈황과 당 태종 치세(정관 9년) 때부터 중국, 몽골리아 등 아시아 대륙에서 활동했던 1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7.01 11:09
-
요한 칼빈의 개혁사상에는 문제가 없을까? 16세기 종교개혁기의 수준에 비하여 기독교는 사상적 진보를 했을까? 루터나 멘노시몬스 까지도 비난을 받고 있는데 칼빈 사상은 그의 개혁신앙에 이상이 없는지 겸허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칼빈 정신의 탁월한 신학사상과 교회 운용능력의 비법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당시의 견해에 한정하지 않고 좀 더 멀리 18세기, 19세기, 20세기, 그 이후를 살펴 `내 교훈말이야, 시대의 진전에 따라서 보완되고 진보해야 됨을 너희는 명심해야 하느니라'는 어록을 남겼는지 검토해 보라. 기독교 역사 전 과정을 살펴보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6.24 11:16
-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역사의 큰 무대에 등장하여, 당시 유럽 천지를 뒤 흔드는 개혁의 선봉에 섰을 때, 그는 세 가지 현안을 제시했었다.첫째, 오직 성경, 둘째 오직 믿음, 셋째 만인 제사였다. 이들 중 `오직 성경'과 `오직 믿음'은 대충 가까이 접근하였으나, `만인제사'는 손도 대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중세 그 깊은 어둠의 날들인데 천하만인이 하나님께 제사장 자격으로 나아간다는 하늘 법칙을 감히 일반화할 수 있겠는가.그런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큰 사고가 났다. 루터가 제시한 개혁의 대안인 `만인제사'가 당시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6.17 10:49
-
기독교의 지나온 2천여년의 역사과정을 살피다가 문득, 또 문득 느끼는 것은 `성령님' 또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AD 313년 밀라노 칙령)이전까지는 카타콤 핍박시대를 살아오면서, 교리신학의 완전성을 기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니케아 회의' 때의 분위기로 볼 때 성령님에 대한 소홀함을 느낄 수 있다. 제국시절 또한 `성령 하나님'에 대한 홀대를 지적할 수 있다.다시 말하면,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일 수 있는 `삼위일체'에 대한 공부와 기도 부족으로 기독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6.10 11:21
-
한반도 들녘에 이상 기류가 생겼다. 갑자기 전직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고향마을 뒷산 일명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이 세상을 저버렸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던가. 한반도에 수백만 여명의 울먹이는 조문객들이 강을 이루고 산을 이루었다. 아, 메시아를 기다리는 백성들이구나. 천년의 가난은 면했다지만 영혼이 공허한 백성들이 민주주의를 찾는다. 사람 살만한 세상을 원한다면서 허영에 들 뜬 정치꾼들에게 배신을 당하던 끝에 원하던 지도자가 나타났다고 함성을 질렀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가사에 도움을 받고자 하여 기업가들로부터 몇 백만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6.03 10:46
-
현재 기독교의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과 일치하지 않다.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은 임마누엘(사 7:14) 시간에 맞추어야 하고, 또 그 시간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에 맞추어야 한다.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솔로몬의 예루살렘 시간에 멈추어 있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肉化)된 시간 곧 임마누엘 예수의 시대에 진입하지 못한 교회 지상주의자들, 개교회 주의자들, 교파(분파)주의자들,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5.27 11:32
-
유럽의 교회가 문을 닫고, 텅 비고, 타종교의 집회장소로 팔리거나 향락의 무도장으로 개조 한다더라는 따위의 말을 하는 목회자들을 보면 그 말 이제야 들으셨소, 라고 묻고 싶다. 기독교의 처지를 냉정하게 말하면 이미 버림 받은 지 오래라고 하겠다. 그들의 실력은 교회당에 죽은 예수의 시체 뿐이다. 그러나 죽은 예수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혹시 예수가 죽었다고 했다 해서 불신앙이라 하지 마라). 죽은 신자와 같이 있을 경우 예수도 죽은 시체일 뿐인 것이다. 어떤 목사는 부활절 절기의 설교를 하면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다 무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5.20 10:18
-
본디 종교는 `정지'와 동의어이다. 멈춰라! 곧 동(動)이 아니라 정(靜)이다.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하신 말씀을 주목하여 자신의 중심을 잡으라. 한국교회의 일상을 바라보면 바쁘고 고달프다. 해서, 어떤 때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난다. 특히 `들소리' 또는 이 글을 쓰는 내꼴을 바라보면서는 더욱 더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울은 다마스커스(다메섹)에서 예수와 만난 이후(행 9장 참조) 안디옥교회 선교사로 파송(행 13장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5.13 10:12
-
요즘 NGO(비정부기구)운동이 장엄하고 의연하게 출발했던 초기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NGO는 본디, 종교나 혈통, 이데올로기나 사상들을 뛰어넘는 곳에 위치한다. GO(정부기구)들이 저질러 놓은 세계질서의 혼란으로 말미암은 수 많은 인간비극지대에서 NGO 활동을 하는 이들은 특히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관여를 함정처럼 여긴다. 그것들이 제대로 자기 할일을 했다면 왜, 세계가 이토록 고통을 당하겠는가? 특히 기독교의 경우 `기독교NGO'가 성립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NGO운동 초기에 중앙아시아 등 이슬람권에서 기독교가 NGO신분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5.06 10:04
-
성탄절의 이름으로 메시아 예수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셨다. 그 완성은 성령감림이후 또 다른 상속을 교회에 위임하셨고 보좌 우편을 지키신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후(행 2장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이름으로 세상을 통치하신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 미련이 없으니 모든 소망을 하늘나라에 의지한다 하고 있으나 글쎄 그 `하늘나라'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로 그들은 알고 있는지 답답하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설계하시고 설치하신 후, 그 에덴은 오늘에 이르러 지구 전체를 말하고 있음을 기독교가 알고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기독교 일부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4.27 09:49
-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이는 인류 모두의 새 세계의 출발에 해당한다. 예수 혼자만의 부활이라면 그것은 한 개인의 기적에 해당하겠으나 예수부활은 단순사건으로서의 기적을 말하지 않는다.사단의 훼방으로 에덴이 파괴된 이후, 인류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날을 기다렸는데 그날이 바로 이 세상에서 `죽음'을 몰아낸 예수 부활의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예수 부활은 인간 모두의 생명부활을 말하는 날로 이 땅 위의 교회에게 부여하신 창조적 권능이다.교회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같다. 교회들 스스로가 자기 본분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4.08 11:26
-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하였던 바울의 그때처럼오늘 우리들 또한 예수와 함께 받은 고난의 상처가 훈장처럼 내게 있어야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면서 희롱하는 사람들. 고통스러울 때 포도주가 조금은 도움이 될까? 그때 그들이 건네준 포도주 한모금 입안에 담으시던 예수. 뒤늦게 쓸개즙을 탄 포도주인 줄 아셨지. 장난치지 마라! 이제는 또 그의 옷을 벗겨낸 것으로 제비뽑기라…. 그들은 예수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진짜로 모르는 자들이 있었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4.01 09:48
-
교회는 조직이다.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는 지(구)상 교회는 하늘나라 본토 영역이다. 제2의 아담으로 오사 에덴(지구)을 회복하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활동을 지속해가면서 끝끝내 지상의 모든 영역을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로 복원하실 것이다.교회가 비신앙적 헬레니즘, 곧 영지주의에 빠져서 교회 본연의 길을 망각하고 있다. 그리고 기초 신학(神學)을 놓쳐버린 한국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각 지역의 교회들이 지역마다 사단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화가 가능한가를 지극한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지구는 날마다, 거듭 말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3.25 09:47
-
지금은 위기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교회의 구조를 바로 잡아야 한다. 연합·선교·교육부분은 모든 교파와 교단들이 단일 조직으로 하여 효과를 극대화하자 교회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육신으로 지구 위의 하나님 나라가 된 교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한 번 은혜를 입어 크게 일어나야 한다. 지금 이 시간, 큰 교회다 대교회다 하면서 시비할 시간이 없다. 통째로 무너지게 되어 있는 데 탓만 하고 있기에는 신자이면 어느 누구의 양심으로도 책임감부터 느끼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살아나자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3.18 11:08
-
그리스도인들은 떡덩이 나눔의 수준, 얼마간의 자선(선행)을 하고서 생색을 내서는 안된다. 그저, `너의 것을 너에게 돌려준다'는 심정으로 베푸는 것이 옳다. 요즘 `나눔'에 대한 용어가 세간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 그 단어의 의미가 경제환경에 맞추어 인기 용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나눔'이라는 용어가 자칫 기독교인들에게 혼선과 혼란을 줄 수 있어서 걱정이다. `나눔'이라는 용어는 `세속어'와 `계시어'로 양분된다. 세속어에서의 `나눔'은 가진 것의 일부를 이웃과 나누고, 모자람 때문에 우는 이들의 살림에 얼마간의 보탬을 주는
22세기 대안
조효근 목사
2009.03.04 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