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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터 위에 세움을 입은 생명나무가 하나님의 교회다. 그래서 교회는 존엄한 실체이며 인류의 앞날을 하나님의 나라로까지 발전시킬 주체(들)이다.하나님께서 한국 땅에 교회를 일으키기 시작한지 2백여년,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전방위에 서서 우리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 우쭐하는 마음이 아니라 책임있는 행동으로 매사를 지혜롭게 살피라. 금번 4·9총선 결과에 대하여 큰 기대를 한 바 없으나 하나님께서 적절한 은혜로 주셨다. 애초에 더 이상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지역구 후보를 통해서 정치역량을 길러야 하는데 부족함이 많았다
22세기 대안
2008.04.1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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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로 나의 생명이 되셨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 =====================================■ [] 내 몸에 사시는 부활예수 (2008-03-25 11:44) 예수 내게 오셨다. 부활의 아침에. 내 몸 의지하여 부활, 내 몸에 있어 부활, 부활예수는 나와 함께 동반의 삶을 드디어 시작하였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니, 하셨을 때 내가 아멘 주여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였더니 주가 내게 오셨다
22세기 대안
장상익
2008.04.1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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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하나님께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 1:30)라고 했으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한 바울사도의 글을 읽으면서 한 목사의 마음이 씁쓸하다. 돌이켜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면 `비겁했던 날들이 많았다'는 지적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 글을 쓰자는 생각은 며칠 전부터 했고, 원고지에 목사는 예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제목까지 적어 놓고선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반성하는 마음이 있다. 내가 생각해도 주를
22세기 대안
2008.04.0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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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내게 오셨다. 부활의 아침에. 내 몸 의지하여 부활, 내 몸에 있어 부활, 부활예수는 나와 함께 동반의 삶을 드디어 시작하였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니, 하셨을 때 내가 아멘 주여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였더니 주가 내게 오셨다.언제나 그러하듯이 내 집 들어서실 때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바람처럼 오사 내게 가득 충만한 기쁨으로 오셨다. 말씀하실 때 나는 주님의 옆구리에 난 창자국 그리고 두 손바닥의 못자국을 볼 수 있었다.그순간,
22세기 대안
2008.03.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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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들소리' 독자들에게 또 한 번 글을 올린다. 거듭, 생각하고 기도를 하면 한국내 살림도 쉽지 않는데 왜 미국에까지 손을 펴나, 하고 의문을 가지게도 된다.그러나 나는 별도의 생각이 있다. 하나님께서 미국과 유럽 등, 온 세계에 한국교회의 목사들을 파송사역자로 보내신 뜻이 있음을 믿는다. 특히 미국은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해준 나라인데 요즘은 그들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그래 이제는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이 미국을 깨워 일으켜 저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미국은 10여 년 전까지 70%의 기독교 신자가 있었는데 이
22세기 대안
2008.03.1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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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 2천여 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을 경외하고 찬미하는 기독교 신자들의 대열에 오늘도 수십억의 군중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그 많은 신자들이 보내는 위로가 부담스럽고 안타까우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믿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자이기 때문이다. 이를 시제로 분류하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오늘 이전에 이미 죽었고 현재 죽어 있는 자로 표현해야 한다. 신자(信者)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은 자’이며 ‘예수의 죽음을 맛본 자’이며 그래서 신자의 현재 신분(모습)은 ‘내(신자) 안에 내가 사는
22세기 대안
2008.03.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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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주변환경은 그가 세상에 계실 때가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예수께서 쫓기는데 우리는 늠름하고, 예수는 굶는데 우리는 배부르며, 예수의 제자들은 배반하고 흩어지는데 우리의 제자(신자)들은 넘치고 또 넘치는지, 그리고 예수는 죽음으로밖에는 피할 길이 없는데 우리는 목숨 던지기는 커녕 (사단에게 호통치는지 아니면 타협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또한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지나가기보다 힘들다고 예수 말씀하시는데 천국가기에는 자신있다는 자들이 백만 천만명이 넘고,
22세기 대안
2008.03.0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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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리' 30년에 미국 길을 엽니다. 미국에 가면 한국의 크리스찬들보다 들소리, 곧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가 밝고 마음이 정갈하며 더 많이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선 길입니다.우선 미국에 자리하고 사는 한국인들을 향하여 손짓하며 그들 가운데 주예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소화해낼 영재 같은 인물을 찾기 위해서지요. 대상이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미국 물을 먹으면서 미국의 문물을 직간접으로 대하는 이들이기에 한인들이라도 다르다고 나는 신뢰하고 있습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정확하게 1995년 뉴욕 방문을 시작으로 12
22세기 대안
2008.02.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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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놀음이구나. 하나님의 현실,. 곧 하나님 백성의 현실을 말하는데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단순한 인간일 뿐이 아니다. `단순한 인간'을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내츄럴을 말한다. naturl man말이다. 성경식으로 표현하면 `거듭나지 못한 자'가 `단순한 인간'이고 내츄럴 맨이다.성자 대접을 받는 목사님들에게 당신은 거듭나지 못한자요, 단순한 인간, 또는 육체인간이라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일까요? 기가 막힌다고 하겠지. 그래서 다시 기회를 주려하거니와 기독교 신자들은
22세기 대안
2008.02.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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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교회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은 그 포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일찍부터 교회역사에 나타난 기독교인들의 해오는 일들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져왔다.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시며, 그분이 세상에 계실 때 행하신 일과 남겨주신 말씀에 기준하면 세계교회는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서 행세해서는 안된다. 기독교 역사 2천여년을 다 거론할 필요없이, 21세기 오늘의 현재 세계기독교가 인류앞에서 무엇을 제시하는가를 살피면 빗나간 기독교를 알 수 있다.또, 한국기독교는 남북분단 60여 년
22세기 대안
2008.02.0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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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의 때가 언제 쯤일까? 내일(오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지도층이 등장해야 하는데 소식이 없다. 1945년 8^15 광복절, 그때 어떤 사회 명사는 100년 안에는 불가할 줄 알았노라고 푸념을 했다. 이렇게 빨리 통일(광복)이 올 줄 알았으면 내가 왜 `친일'을 했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럴 것이다. 누가 내일 일을 알겠는가? 그래서 오늘이 곧 내일 일 수 있으리라. `오늘'이라는 시간의 `1초 뒤'가 내일이 되는 것이니 우리는 `오늘' 이 시간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의 날이 언제일까? 그러나 이미 통일의 때가
22세기 대안
2008.01.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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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이 많이 늘었다. 그러나 솔직한 표현법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희망이 있어 보인다. 모처럼 감성에 호소하는 1차원의 눈물이기는 해도 하나님의 눈에서도 눈물 한 방울 쯤은 선물하시리라. 하지만 이 세대의 죄악이 눈물로 감성으로, 원시적 문화(文化)기법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사실 한국교회는 지난 11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년 조찬기도회의 눈물 말고도 2007년 한해동안 크고 작은 집회나 그밖의 교회 행사들을 통하여 `회개운동'을 많이 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감히 `회개운동'이 될법한 말인가. 냉
22세기 대안
2008.01.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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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무엇인가.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지녀온 사고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바꾸어야 할 것들 중 우선순위별로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예수의 비폭력에 대한 교회의 배반에 대한 반성과 자기 심판이 있어야 한다.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대제사장 하인 말고의 귀를 칼질하여 자르는 행위를 심히 꾸짖은 바 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그리고, 말고의 귓바퀴가 땅바닥에 구르는 것을 주워다가 다시 제자리에 붙여 주었다. 이는 치료자의 자비 이상으로 베드로의 ‘칼질’에 대한 강한 부정이 그 행위에 들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의 비폭력
22세기 대안
2008.01.0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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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해를 보내면서 ‘결산’을 하노라고 건방을 떠는 시간에 주님은 세상에 오시네요. 베들레헴 그 마구간, 오시기로 한 그 곳이 거기인가요? 우리들 생각이면 예루살렘 대제사장 집 접견실이나, 한국식으로이면 궁궐이나 대감집 바깥 사랑(舍廊)이어야 하는데 마소가 밤안개 새벽이슬 피하는 마구간, 그것도 말구유(말밥통) 안에 덥석 그 ‘거룩한’ 몸으로 오시니이까? 하나님이신 메시아가 창세기 3장 이후, 또 6장 이후, 22장 이후에 큰 결단으로 오시자 했던 날의 출발이 겨우 마구간 말밥통이십니까? 창세기 3장에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
22세기 대안
2007.12.2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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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나는 배웠다. 하늘꼬리에 매달려 늘 공중잽이 놀잇감 되어 살아가야 함을 말이다. 그리고 너무 일찍 하늘비밀 훔쳐 본 죄 아닌 죄로 이렇듯 천년을 누려도 실증나지 않을 복의 사람이 되었다.나의 다짐이 늘 간절한 것은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도 나처럼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 되거라'하심에 붙잡혀 산다. 산다하니 사는 것 처럼 보이지만 죽은 목숨처럼 살아가고 있다. 사실이다. 엄살이 아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마 16:24~, 눅 9:23~)하
22세기 대안
2007.12.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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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엎드리고만 싶습니다. 무릎 꿇는 시간이 가장 편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됨을 알고 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새벽보다 이른 시간 엎드려 온 방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길어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하나이다. 머리, 왼손, 오른 손, 왼무릎, 오른 무릎을 꿇어 엎드리는 몸짓이다. 이는 절하는 법의 한 방법으로 옛사람들이 신에게 드리는 예법으로 주로 불가(佛家)에서 많이 사용한다.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가 엎드리는 법을 살피면 몸을 둥글한 모습으로 만드는
22세기 대안
2007.12.1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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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 거듭나야 하느니라(요 3:3)하신 말씀 앞에서 `아, 그럼 이 늙은이가 어미 뱃속에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느냐'고 불둑거렸던 니고데모 앞에서 묵묵부답이셨던 예수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그때 예수의 침묵에서 우리는 늙은이가 어미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야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은 너의 숙명(운명, 책임)이라는 단호함을 읽을 수 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이전에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실체를 날마다 확인해야 한다. 자기 시체를 눈여겨 보면서 날마다 생
22세기 대안
2007.12.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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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교단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몇몇 교계 주소록들에 나타난 숫자만 해도 180여개의 교단이 이름을 올려놓고, 음성적으로 교단행세를 하는 경우도 100여개 교단이 된다.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닐까? 한마디 악담으로 처리하자면 예수 팔아먹고 사는 싸구려 종교집단들이 너무 섞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 당시에도 하나님 팔아먹고 살아온 성전주의 제사장 집단들이 있었고, 예수 팔아먹는 자들도 많았다. 오늘이라고 이같은 자들이 모두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 해도 너무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22세기 대안
2007.11.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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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으실 것이다. 승부처가 성령과의 관계회복에 있음을 아는 사람들의 성화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와의 만족한 관계 이후의 일이다. 바쁘고 급해도 주 예수와의 관계가 합당해야 한다. 주 예수와 신자의 관계는 내 골고다를 네가 동의하느냐에 `아멘'이어야 한다. 여기서 `동의한다'는 말은 `동참'한다고 했을 때 그 뜻이 더욱 명쾌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 십자가는 세상에 태어날때부터이며 하나님과 완전한 일치된 삶에서 빛을 발한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22세기 대안
2007.11.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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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만큼의 위기에 와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아직도 꿈을 꾸는 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지금이 '80년대인 줄 착각하지 마라. 사회변화에 따른 산업인구의 급격한 이동 때에 농촌 신자들의 주거이동에 따른 도시교회의 증가를 부흥으로 착각했고, 또 그 때 함께 끼어들어온 새신자들을 목회자의 능력으로 일구어낸 열매로만 생각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물론 어느만큼은 인정한다. 그러나 늘 자기행위에 대해 인색해야만 싹수가 있는 법이다. 바로 이같은 의미에서 한국교회 2007년 마무리 지점에서 교회들(교단들)은 겸허해져야
22세기 대안
2007.10.29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