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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전히 499명의 예루살렘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에 바벨론 군대 따위의 힘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왕과 백성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료인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라고 핍박하고 왕을 부추켜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괴롭혔다. 핍박과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은 예레미야는 오직 혼자서의 힘으로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버리셨으니 이방인의 소굴이 되며 박쥐와 승냥이의 놀이터가 되게 되어 있다면서 고군분투 중이었다.이미 성벽을 포위한 신 바벨론 군대는 성 안에서 단 한사람도 도망칠 수 없도록 포위망을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9.0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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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회현실을 개탄한다. 특별히 잘 한 것이 없기도 하지만 역사를 살피고 그것의 과정을 판독해내는 실력이 부족하다. 감리교가 감독회장 없이 3년 분쟁을 하고 있으며, 여의도교회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꼼수,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와 그 후유증으로 개망신 당해버린 일들이 한국교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절망하고 자기 집에 불지르기, 제 얼굴에 침뱉기 식으로 허송해서는 안된다. 교회가 망신스러운 모습을 보여 세속인들로부터 욕을 먹고, 교회가 제대로 되느냐고 걱정해주는 사태까지 왔지만 절망과 낙담으로 세월을 허비해서는 안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9.0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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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메시아 예수께서 '탈유대교'의 이름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래도 그만큼 자기노릇을 하던 유대인들을 예수께서 미워하여 버리신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다음 경영에 대한 이해력 부족으로 탈락한 것이었다.하나님의 임마누엘 되신 예수께서 다시오시는 그날은, 하나님의 그분이 기독교를 버리시는 파격의 터 위에 재림 메시아의 이름으로 오실 수 있다.우리는 재림 예수 시대를 '새종교 시대'로 해석한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온 땅, 온 인류, 더 나아가서 만유되신 하나님의 생명들이 새롭게 태어난다. 이사야가 그의 책 11장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8.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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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광야를 헤매던 때에도, 여호수아 따라서 요단을 건너 그들의 위상 뚜렷하게 세워가면서 12지파 각각 영토지분을 받았던 이스라엘은 의연하고 당당했었다.이스라엘 민족의 연속선상에서 오신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그리고 메시아 영접에 장애가 되는 그의 육신까지 '헐어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요 2장 참조). 성전이 무너져야 함은 성전제사의 시대성을 상실하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잠시 육신을 입으셨으나 이 육신은 하나님만이 입는 것 아님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주 예수 자신의 육신도 '헐어낼 결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8.1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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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을 읽으면 추상같다는 말이 어떤 경우를 말하는가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와 만나게 된다. '화 있을진저'가 연거푸 일곱번 쏟아져 내려온다.하늘벼락이 연거푸 일곱번 동일 장소 인근에 쏟아졌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무서운가, 또 '화 있을진저'의 각 내용을 들여다 보라.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또 보라!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8.0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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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망하여 느부갓네살의 신바벨론 포로되었다. 그러나 잠시 몸을 일으켰던 신바벨론 느부갓네살은 신흥 강자인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졌다.느부갓네살의 보호를 받던 예루살렘의 자식들은 주인 바꾸어 섬기면 된다. 그런데 새 주인 고레스가 보니 예루살렘 포로들이 자기들과 똑같은 '유일신'을 섬기는것 아닌가. 너무나 반가운 고레스 대왕이 예루살렘의 자식들을 후대한다.“너희는 이제 포로가 아니다. 나의 친 백성이나 다름이 없다. 너희의 필요를 내가 다 채워줄거야!”예루살렘 자식들 중 일부는 성전복고파가 되어 고레스의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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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7.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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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인간세상에서 당신은 위인의 반열에 있습니다. 의과대학 1학년 때 폐결핵 말기 환자, 그러나 그때 벌써 영어단어 8천 단어를 소화해냈다는 이야기… 나는 이천식 전도사와 조용기 목사를 늘 비교해 본다.이천식 전도사는 내 고향 나주에서 처녀 목회를 했다. 그 역시 조용기의 동기동창이며 동급의 폐병 말기환자, 그는 온통 장로교 틈바구니에서 낯설은 순복음파 전도사로서 고생 많이 했다. 그러나 그는 돌 예배당 건축 때 고생을 많이 했었다.예수를 믿지 않은 일반인들도 그의 겸손과 청빈을 칭송했었다. 그러나 그는 아까운 30살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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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7.1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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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어도 100살 이내의 기간에 만들어내는 하나의 작품이다. 뜻을 세우고, 계획살림을 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대개 '40(살) 불혹'이란 말을 응용할 때 40살이면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바른 도리를 지켜낸다는 해석이 있으나 더 깊은 눈으로 살피면 40살에 이르면 어딘가에 치우치면 안되고 자기 중심을 잡아 유혹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위험성을 느끼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50이면 지천명'이라 하늘의 명령을 안다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좀 더 사려깊은 사람이면 하늘의 명령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어느 누군가를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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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7.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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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지가 않다. 내가 죄인입니다. 고치겠습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이런 따위의 제목을 걸고 집단의 이름으로 기도회를 연다 하는 데, 과연 그게 사죄와 참회의 뜻을 담은 기도였던가? '…금식기도원'에서 기도회를 열고 있는데 과연 금식하며 기도했던가?옛시절에 '곡(哭)쟁이'를 돈 주고 사오던 때가 있었다. 괴롭히던 시어머니 죽었는데, 곡은 커녕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자칫 망신당할 수 있는 며느리 등등, 억지로 울 수 없어서 체면치레로 곡(哭)을 해야 했던 시절처럼 요즘 한국교회가 너무 엉뚱한 짓을 여러번 해서 일반 사회 앞에 크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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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1.06.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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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공부 초기에 유라시아의 심장부를 눈여겨 보았다. 로마제국기독교가 교리논쟁으로 치고 받으며 싸우다가 결정적 파국을 맞을 때 사건 하나는 AD 431년 에베소 세계교회 회의에서 있었다. 로마교구(현 로마가톨릭교회)의 비호를 받은 알렉산드리아 교구 주교인 키릴루스의 정치술에 휘말려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정죄를 받고 로마제국에서 쫓겨난 것이다.네스토리우스의 뒤를 따라서 버림받은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네스토리우스파가 떠나니 제국교회가 절반은 텅 비어버렸다고 한다.네스토리우스가 수리아,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6.1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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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움직이고 있다. 아시아 맹주들의 자리다툼이 궁금하다. 위세등등했던 중국이 인구과잉과 지도력 난조로 말미암아 통어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일본 또한 한반도를 견제하다가 지쳐있고, 드디어 대한민국이 천년만의 기회가 찾아와서 콧노래를 부르고, 남북 분단이 언제적 일인가 하니 벌써 아스라한 옛일 같다. 드디어 대한민국은 고구려와 고조선의 옛 터를 놓고 영토반환 협상을 중국과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나의 꿈이다. 하나님이 한반도인의 영특하기가 마치 영물과 같은 총명으로 단장한지라 대한민국 기독교를 통해 세계 기독교 역사를 회복코자 하실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6.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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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밤, 성 프란시스와 그의 제자들이 잠자리에 들었다. 일부는 잠이 들고, 또 일부는 깨어 있을 때 어느 누군가가 '나 죽는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놀란 그들이 불을 켜고 누가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지 확인했다.“누구냐, 어디가 아프냐?” 프란시스가 근심어린 소리로 물었다. “전데요. 지금 배가 고파서 죽겠어요!” “뭐야!”기가막힐 노릇이었다. 배가 고파 죽겠다니. 그러나 프란시스는 밥을 준비하고, 배고픈 제자가 혼자서 먹자면 민망할까봐서 모두에게 야참을 먹도록 했다는 옛 이야기이다. 전설같은 이야기다. 요즘 어떤 수도원이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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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6.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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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감리교단·한국기도교총연합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교단과 기관 두 곳의 책임 당사자들도 부끄러움을 얼마만큼 느끼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대의 목사 한 사람으로서 또 한번 부끄럽다.왜,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국가와 사회는 물론, 하나님과 그 교회 앞에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할까? 감리교단의 경우, 그들이 소속한 교단에 막중한 피해를 끼친 당사자들, 그들은 당시 선거의 과정을 책임지어야 할 감독회장이나 선거에 출마해서 사고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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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5.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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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한 바울사도의 글 표현에서 우리는 그의 치열한 승부욕과 함께 자기의 위치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겸허함을 발견하게 된다.그는 `그리스도(예수)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라는 무모한 도전을 하지만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라고 하였다.아, 그에게 잡힌 바 된 그것을 마주잡고 싶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성장해야 한다. 커가야 한다. 오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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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5.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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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열심 있는 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 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공자·석가 등 모든 종교들의 교조들은 다 무덤이 있으나 에수님은 부활하셨기에 무덤이 없습니다.'그러나 예수의 무덤이 있다. 예수 부활의 `현재완료 진행형'을 이루지 못한 교회들 모두가 예수의 무덤이다. 교회의 이름으로 예수의 현재를 증거 하지 못하는 교회는 예수의 무덤이다. 고대 기독교 세계교회는 예수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성립했었다. 그러나 오늘의 많은 교회들이 예수의 무덤으로 자리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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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5.0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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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발언을 계속 하면서도 나는 주여, 시나이 광야를 헤매면서 아직도 모세의 꿈에 젖어 사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일지라도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금번 부활 절기에는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다.갈망과 목마름으로 오늘의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 심장부인 십자가에 푹 젖었으면 한다. 마태 16장, 마가 8장, 누가 9장에 `세상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열망을 오늘의 우리는 알고 있는가,고 묻는다.세계 최고를 겨룬다는 어느 목사는 `저주는 예수 혼자 짊어지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4.2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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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예수께서 메시아로 세상에 오시기 이전 구약의 말기증상을 보이는 유대의 성전종교 형식이다. 그래서 역사 위에 임마누엘로 오신 십자가 예수는 없다.한국에 예수가 있다면 영지주의(Gnosticism)로 옷입은 가상의 기독교일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이니 시대구분으로는 구약종교이며, 사상적으로는 율법주의 형식이다.그래서 한국교회는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사장이니 구약법대로 세습목회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 꼴을 보는 필자는 안타깝다고 발악하듯이 외치고 있다.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4.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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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그 형식이 구약의 성전시대 말기의 조건에 매달려 있다. 그것도 바벨론 포로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세례를 받은 변질·변형된 형식이다.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지상강림 이전, 짐승 잡아 제사드리는 `성전종교'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영적인 메시아 구경은 했을 수 있으나 십자가에서 대속(代讀)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죽음(갈 2:20)을 경험하지 못한 매우 고약한 기독교로서, 종교지상주의 시대 폭력의 틀에서 한발자국도 탈피하지 못한 신자들이 99% 정도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그들은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3.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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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수준을 높이자.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단계적 수준 향상을 도모해 보자. 말로써 개혁을 부르짖는다고 되는 것이냐. 오히려 개혁을 말하는 자들이 개혁대상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이니 뜯어고치자는 개혁이 어찌하여 조롱거리가 되었느냐.오늘의 교회가 개혁자들의 시대처럼 총명하고 정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루터나 칼빈의 시대는 500여년 전이다. 시대는 중세, 1차 산업시대였는데 오늘의 기독교가 16세기 개혁의 수준을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는가.종교개혁은 16세기 전유물이 아니다. 예수 재림의 그날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생각해 보라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1.03.2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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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신더러 주의 종이라 했나? 뭐, 또 제사장이라고. 그럼 당신은 아직 예수의 은혜를 맛보지 못한 율법의 종이요 모세의 휘하일 뿐이다. 꿈꾸지 말라. 모세의 떡에 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배반자가 되려 하는가? 마르틴 루터가 제창한 `만인제사'의 교리가 지금은 물론 기독교의 앞날에 영원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루터는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키리라(요 2:19)' 하신 말씀에 기초하여 '만인제사'를 주장했다. 그래서 그 효력은 영원한 것이다.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서 목사들에게 성찬과 세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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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1.03.16 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