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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은 여인이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말을 들은 나사렛 처녀 마리아가 깜짝 놀라서 되묻는다. 어찌 이런 인사를…. 마리아는 기가 막혔다. 유대인의 관습 중에 ‘은혜를 입은 여인아’ 할 때는 ‘임신한 여인이여’로 해석이 가능하니 나사렛 처녀는 기가 막힐 수 밖에. 어찌 이런 인사가 있다는 것인가? 몸 둘 바를 모르는 마리아, 자기 말고 또 누가 들었으면 어찌하는가?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임신을 하다니, 외간 사내와 눈마주 친 일 한번 없는데, 꿈속에서도 없었는데….마리
22세기 대안
들소리신문
2013.12.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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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건강한 생명력은 정통 기독론 신앙을 가졌는가에 달려 있다. 기독론 승부가 신자의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다. 정통 기독론으로 신앙과 신학이 훈련된 목사는 결코 삯꾼이 될 수 없으며, 예수 팔아서 자기 명예를 꿈꾸는 도둑이 될 수도 없다. 매 순간, 숨을 쉴 때마다 살아계신 예수가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감히 예수의 지분을 노리겠는가.지난번 WCC 문제로 한국교회가 한번 발칵 뒤집혔던 것도 사실은 WCC 조직 안에는 다수 세력의 비정통 또는 사이비 기독론 신학에 물든 자들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한국교회가 그들을 배격했던
22세기 대안
들소리신문
2013.1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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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비극, 이는 한국교회의 비극적 현실과 궤를 함께 한다. 화려했던 조용기 목사의 목회인생이 말년에 엄청난 위기를 맞아 자칫 돌이키기 어려운 한계를 앞두고 있다. 이미 여의도 출신 장로들이 주축이 되어 그가 교회의 돈을 착취했고, 탈취도 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미 수십년 된 여자 ‘파리의 나비부인’ 문제까지 튕겨져 나와서 그를 더욱 망신스럽게 하고 있다. 어찌해야 되는가? 내부 고발과는 별도로 현재 법원에 계류되어 재판까지 받고 있으니 ‘아차’하면 법정구속 사태도 있을 수 있어 결코 방심할 사안은 아닌성 싶다.
22세기 대안
들소리신문
2013.12.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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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가 전해주는 말 가운데 ‘휴머니즘은 마지막 적그리스도’라는 명언이 있다. 현재 기독교는 휴머니즘과 기독교의 간격을 구분하지 못하여 고통하고 있으며, 양자간의 오해를 빚기도 한다.기독교의 본(本) 신학에서는 휴머니즘을 동격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리우스 기독론과 헬레니즘의 연합인 ‘로고스 기독론’ 그 자체를 이성주의로 분류한다. 그러나 현재 정통 기독교가 유사 기독교 세력들에게 밀리는 것은 휴머니즘적 테크닉의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다.정통 기독교라고 해서 휴먼 테크닉에 밀릴 필요가 있을까? 예를 들어 타인이나 타 세력과의
22세기 대안
들소리
2013.12.0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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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으로 가득한 세상, 이토록 소란스러울 때는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주간동안 WCC(세계교회협의회) 부산대회를 치렀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어쩔 수 없이 연륜이 짧은 연고로 여러가지 판단에서도 미숙성을 보여주었다.3년 전부터 대회가 확정되었는데 그 많은 시간들은 흘려보내고 대회가 임박해서야 대회경비가 필요하니 100만원씩 내라고 했다가 그것이 잘못되어 시비가 되기도 했고, 조용히 지낼법한 교단과 교회들이 행사 직전에야 반대를 한다며 시위를 하는 등 소요를 일으키고, 어떤 목사는 그동안 집요하게 WCC 부산총회를
22세기 대안
들소리신문
2013.11.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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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의 은혜란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이 은혜는 아브라함에게서 구체화되는데, 하나님이 인류의 원죄를 고뇌하신 끝에 결단을 내리신 시간이 아브라함의 모리아 제단에서 출발한다. 아브라함은 100살에 낳은 이삭을 제물로 선택키로 하여 이삭을 바친 그 제단에서 ‘속죄양’시대를 연다.이스라엘은 바로 그때부터 속죄제사를 준비했다. 야곱이 이스라엘 되기까지, 그가 또 속죄와 용서를 깨닫기까지 이스라엘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야곱이 이스라엘 되기까지 얍복강의 밤 절박한 기도가 있었고, 그는 드디어 이스라엘
22세기 대안
조효근
2013.10.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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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시대인 구약의 날들 중 인상 깊은 예언자가 세 사람 있다. 메시아의 날을 예언하는 무대를 2백여 년 동안 크게 잡고 활동한 이사야. 그는 왕위 서열 두세 번째라는 왕족 출신. 또 한 사람은 눈물의 예언자인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이 있다.이 세 사람은 예언의 기간도 길고, 또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로 한 기간의 예언자들이다. 특히 이사야는 전체 구약인의 대표라고 할만큼 고난과 대속죄의 메시아를 99.9% 정도의 정밀도를 발휘한 예언자다. 더 멋지고 아름다우며 꼭 닮고 싶은 그의 생애는 100살이 넘어서까지 예언을 했다는 점, 그리
22세기 대안
들소리신문
2013.10.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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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인구가 많아지고 예배당 신자들 대다수가 늙은이들과 여인들…, 여인들이 아니라 힘 없는 할머니들이 가득하다. 그나마 1천만명 이상이라고 우쭐대던 대한민국 교회 신자 총수가 3백여만 명쯤으로 쪼그라든다면 어찌하겠는가?아마, 그렇게 될거다. 인류 학자들은 요즘사 예측하지만 필자는 오래전부터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지금이라도 방향 대전환을 한다면 길이 열릴 수가 있으나 어느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다.한국교회의 질병은 불임증(不姙症)이다.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병이다. 그들 스스로가 무정란 같은 절차로 태어났으니
22세기 대안
조효근
2013.10.1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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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진 것들은 모두가 살아남고자 몸부림 친다. 나뭇가지들 사이에 살면서 보호색 장치가 잘 된 곤충류나 심지어 뱀들까지도 그들의 보호색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살아남기 위하여 적을 공격하여 먹이를 챙기고, 적들을 따돌리면서 자기 기반을 넓히기도 한다.북한의 권력이 ‘이석기’라는 아직은 유치한 종북파며 위장 민주주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함을 질러대는 모습을 보자니 저들이 너무 심한 것 아닐까? 아예 내놓고 장난인지 포석인지를 해대고 있다. 세계사 속에서 공산당 권력은 이미 소멸해 가는 악업이 되었고, 다만 유사 공산당이 북한
22세기 대안
편집부 기자
2013.09.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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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예수는 부활신앙 가진 자와 만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니…’ 산 자의 종교가 예수다. 예수 부활, 예수의 영원성은 현재다. 더 정확하게는 현재완료다. 현재 완료형 부활신앙이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의 현안이 하나 둘이 아니다.첫째는 돌발처럼 통진당 이석기 씨의 내란음모죄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는 그동안, 한 3년 동안 그들 통진당이 민주당을 감고 돌면서 술래잡기 비슷한 운동을 하는 것을 위태롭게 지켜보다가 드디어 그들의 마각이 드러났다. 이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9.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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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없는 교회는 예수의 무덤이다. 비슷한 소리로 신자 모아놨다고 그들이 예수를 대신하거나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한국교회에 오신 예수는 영적인 예수, 가현적 현실에 나타난 예수는 몰라도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다시 산 부활의 예수라고 하기에는 시대구분이 분명치 않다. 한국교회의 예수는 모세가 예수의 옷을 입고 나타난 가현설 예수로 정의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의 교회론은 ‘예루살렘 성전주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성전이 예수 노릇 하는 곳에서 역사 예수(십자가 예수)는 활동하지 못한다.성전주의는 대개 백명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9.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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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본지 기사에 일본인 요시다 목사(서울 일본인교회)의 글이 실렸는데 그는 말하기를 한국교회가 3·1운동(1919년) 당시 신자가 전체 인구의 1%였는데도 그토록 큰 울림을 주었었다고 상기하면서, 그런데 현재는 인구비율 20%가 기독교 신자인데 어찌하여 ‘그 존재의미가 보잘 것 없느냐’는 내용의 말을 했다(물론 ‘ 존재의미가 보잘 것 없다…’는 식의 표현은 필자의 방식으로, 그분 언어감정을 정리한 것이다).그 분의 글 내용은 넌지시 현재의 한국 기독교를 경고한 셈이다. 요시다 목사의 발언이 아닐지라도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무자비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8.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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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전 내 동포, 당시 2천만 명이 8·15 그날 목청이 찢어지며 감격하고 울고 뛰었을 것이다. 그 감격을 말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졸지에 일본의 노예가 되어 36년 동안, 참으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살아왔다.해방의 그날, 1945년 8월 15일. 며칠 감격에 겨워서 울고 웃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남북한이 38선을 나눔선으로 하여 북한과 남한을 나눈다고 했다. 그 말을 우리는 농담으로 들었다. 그러나 남북한에 각각 다른 권력이 자리잡고, 곧이어서 북한의 김일성 세력은 당시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모택동의 지원을 받으면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8.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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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서 태어난 자가 아니면 하늘 일 모른다 하시니, 기분 좋은 말로 예수에게 덕담을 하던 니고데모가 머쓱해졌다. 그는 화가 났다. “내가 누군데, 산헤드린 수장이야. 너같은 나사렛 촌놈으로서는 하늘의 별 같은 사람이야. 그런데 뭐, 날더러 하늘나라 이야기 하려거든 하늘로서 태어나야 한다?” 화가 난 니고데모, “여보시오! 예수 선생. 그럼 이 늙은이가 어미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란 말인가?”니고데모의 공격적 질문에 예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는 거듭 태어나 하늘사람이 되자면 어미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든지, 무덤으로 갔다가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8.0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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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람보!’라고 한다. 하늘 꼭대기 만큼 높은 것이 아니라 겨우 6미터 높이의 보안탑을 쌓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을 불편케 한다. 이를 두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리장벽’이라고 한다. 보안 울타리거나 분리장벽 등의 호칭이 문제가 아니라 그곳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확장을 바라보면 참으로 딱한 인간들, 매우 협소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 개미집처럼.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금 이시간도 치열한 생존의 투쟁을 한다.돌이켜 그들의 역사를 보면 AD 135년 하드리아누스 로마 황제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7.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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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의 예수는 따르는 자들에게 ‘내가 하늘에서 온 떡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파격선언을 하였다.그러나 이 말씀을 기독교는 아직도 해석을 못하고 있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성찬식 전례’를 위한 교훈이라고 한다. 맞다. 그러나 틀린 말이다. 예수의 육화를 말함이고, 다시 말하면 예수의 해체와 복원의 기술(신비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예수 영역의 도전을 말하는 것이다.예수에게 장애를 받지 마라. 예수의 걸림돌이 되지 마라. 예수가 너의 가는 길에 우상이 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어찌하려는가? 십자가 흉내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7.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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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과 7월 거듭해서 중국의 분쟁지인 타클라마칸(신장 위구르)과 이스라엘의 심장부위를 압박하는 팔레스타인을 각각 다녀왔다.2017년 실크로드 장정의 출발지와 종착지점인 두 지역을 동시적으로 관찰하고 무엇을 어떻게 채우고 다듬어야 할까를 위해서 힘든 여행을 거듭했다.역시, 내가 알고 있는대로 현장은 살벌했다. 5월 28일에서 6월 5일까지 우루무치에서 쿠얼러, 워치앙, 미란 등을 경유하여 허탄까지 여행하는 동안 이 지역들의 위구르인들과 우리차 운전기사인 한족의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특히 허탄의 위구르인들에게서 느끼는 분위기에서는 일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7.1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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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가 무서우리만큼 냉담하다. 메시아 예수께서 재강림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 승천하신 후 무려 2천여 년이 지났으나 교회는 재림예수에 대한 기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노아의 때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 120년 동안 혼자서 배를 만들던 그 사람이 생각난다. 또 있다. 선지자의 시대 정점인 바벨론 포로기(BC 586년) 무렵의 선지자들이 있다. 초기 이사야(BC 720년대)나 미가, 그러나 역시 포로기 이사야 그가 이룩한 메시아의 길 예비는 탁월했다.메시아 강림시대, 처음 예수께서 오셨을 때 많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6.2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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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마’ 하신 말씀을 가슴속 깊이 새겨두고 있다. ‘다시 오마’ 하심은 주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믿는다.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주여 오시옵소서’ 했던 교회가 요즘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왜일까? 혹시 예수께서 다시 오신들 ‘지금보다 더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의 자만심일까? 또 혹시, ‘다시 오마’ 하심의 약속을 성령강림(행 2장 참조)으로 해석한 자들의 위세에 눌려서 더는 바라지 않는 현상일까?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교회 현상을 바라보면서 주 예수께서 다시 오셔야 함을 절실하게,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6.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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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은 사도들을 뛰어넘는 영적 총명을 가진 초대교회 지도자였다. 그는 ‘종교시대’의 종결을 예고하는 이사야(사 66:1~)를 배웠고, 종교지상시대의 마성을 향해 결정적 타격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요 2:19)를 배운 탁월한 지도자였다.그러나 그는 ‘모세의 율법을 폐기하라’ 했다는 음모(행 6:14)와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곳이 아니라는 이사야의 가르침을 웅변하다가 잡혔다(행 7:48~). 스데반은 정통신앙, 예수의 가르침에 바르게 선 그의 믿음으로 인해 사울이라 하는 서투른 율법학자의 지휘를 받는 유대집단에게 붙잡혀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6.05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