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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헤아리는 눈, 또 그 눈이 보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요즘 ‘대왕의 꿈’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신라의 김유신이 북한산성 근처에서 만난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패망시키기는 했으나 당나라 군과 묘한 갈등에 빠지고, 삼한일통을 맹세코 다짐하며 동지가 되었던 김춘추와 김유신의 갈등은 신라의 조정에 친당과 반당세력 갈등으로 김유신을 업은 태자의 반란이 일어나서 친당파가 꺾이고 있다.드라마를 비껴두더라도 한반도에 터를 둔 우리 대한민국의 비극적 현실은 고구려, 신라, 백제에 큰 인물이 없어서 빚어진 결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5.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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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늘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의 불을 안쓰러워서 발을 동동 구르시는 분만이 아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바리새인 집 식탁에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입심 좋은 율법사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수의 말씀에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율법사보다 더 고단수이셨다. 누가복음 11장 현장으로 가보자. “너희 바리새인들아, 뭐 손 씻지 않아서 불결하다. 너희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지만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잖아.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은 만들지 않으셨을까!”화 있을진저!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5.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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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0년쯤 뒤에는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거나 용호상박의 각축기에 들어갈 것이고, 인도와 일본이 세계 정상을 누리며 저들 중국, 인도, 일본이 아시아의 일등국이 된다.이는 미래학자들의 계산된 예상이다. 한국은 저들 세 나라를 바싹 뒤쫓으면서 숨가쁘게 달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 해체가 평화적으로, 보다 빠른 기간에 이루어진다면 아시아 선두에 나서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고통스럽게 무너지는 절차에 들어가면 우리는 의외로 큰 타격을 받아서 아시아 삼류 국가로 추락할 수도 있다.자, 그러면 어떻게 한다. 승부처가 딱 하나 있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5.0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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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50년대에 맹주 이단자 마르시온 시대 메소포타미아 출신 타티안(Tatian)이 스승이요 순교자인 저스틴에게 반역, 배반하고 문명 우위를 뽐내며 자기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 에뎃사의 바 다이산 등이 정통 기독론을 흔들더니, 알렉산드리아 오리겐의 좌파 제자급인 아리우스가 AD 300년대 전후로 맹렬한 기세로 反기독교 운동을 벌였다. 그는 로마제국 진출을 꿈꾸는 신흥종족인 게르만족을 배경으로 전통 신학과 신앙의 틀 흔들기에 열중했다.마침 그때가 콘스탄티누스가 분열된 로마제국을 통일하고, 황제도 한 사람, 제국도 하나, 종교도 하나를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5.0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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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정직하고 결백하다. 그래야 한다. 또 거룩한 양심의 소유자여야 한다. 인간의 하급본능에 속한 이성문제, 탐욕 등은 불쌍히 보아 잠시 회개의 시간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목사가 자기 자신의 학문적 높이를 끌어 올리기 위하여 논문 표절을 하고, 가짜 박사 학위를 진짜 라고 우겨대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목사직을 얻기 위한 기초 과정인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는 절차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성과 학문의 탑을 쌓은 자로 내세우기 위하여 돈을 주고 논문을 사고, 남의 것을 베껴대는 수준, 또 학위를 줄 수 없는 대학의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4.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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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자들은 날마다 새로운 탄생을 경험해야 한다. 부활, 예수 부활 곧 나의 부활을 온 영과 몸으로 체휼하는 시간까지 신자의 기다림(행 1:4)은 간절한 인내와 겸손함을 필요로 한다.위로부터 능력을 힘입을 때까지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씀의 골격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에 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그 은혜를 기다려야 하는 장소는 예루살렘이다.여기서 예루살렘(모리아, 골고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성령 하나님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4.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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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든지,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너는 나의 이 고통을 모른다 하지 마라. 내가 말하지 않더냐.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7~). 이렇게 절박한 심사가 있었던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가르치시고 생활하실 때,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말씀을 언제 어디, 혹 꿈속 잠꼬대로 하신 일이 있던가?이 밤 겟세마네의 이 밤이 절박하고 참으로 간절하다. 얼마나 다급하고 얼마나 곤고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4.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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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마주교다.” 고마운 이 한마디로 장차 로마 가톨릭이 정통과 보편교회의 본래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더구나 그의 교황명은 프란치스코이다. 1226년 세상을 떠난 앗시스의 수사 프란시스(영어 명칭)인데 지난 800여 년 동안 프란시스의 이름을 내세운 교황은 없었다.프란시스라는 이름은 순명과 청결, 청빈과 겸손의 삶으로 표상되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프란치스코를 사용하기가 겁이 났었다. 그런데 금번 탄생한 교황이 자신감 넘치는 결단으로 앗시스의 프란시스를 교황권 현장으로 불러냈다. ‘앗시스 프란시스’는 아니라고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3.2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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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과 시련을 동무삼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어내는 것이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상대는 교회의 목사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교회는 하나님의 존엄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몸이다. 거룩한 땅, 하나님의 지상나라의 축이요 머릿돌이다. 반석이요, 그분의 영광이시다. 어떤 이유로도 교회가 교회를 홀대하는 현실, 목회자가 교회를 사유화하거나 개인 재산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함량이 모자란 목사들이 목회하는 그 교회는 담임자로부터 학대와 핍박을 받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교회의 선생이요 목사를 자임하는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3.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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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크게 한 번 개혁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뜻은 하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시다. 예수는 예수만으로 그 안에 그리스도를 포함한다. 우리의 오늘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는 ‘어중이 기독론자’들이 많이 있다. 예수는 피조물이나 그리스도 되심으로 완전해진다는 ‘떠중이 기독자들’도 많이 있다.아예, 예수의 대속(代贖)을 거부하는 자들도 수두룩하다. 예수의 대속이 없으면 기독교는 절대종교가 되지 못하고 예수 자신도 실패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대속이 아니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그 합일체가 될 수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2.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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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가 부친 콘스탄티우스의 갈리아(현 프랑스) 지역 부황제 뒤를 이어 젊은 나이에 부황제에 올랐다. 더구나 순번제로 정제(正帝)에 오르는 혜택까지 덤으로 받아 곧바로 대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변방의 젊은이가 갑자기 부황제도 아니고 (정)황제가 되려하니 라이벌이 생겼다. 그 이름이 막센티우스 로마 본토의 부황제였다.막센티우스는 콘스탄티누스에게 결코 황제의 자리를 내줄 수 없었다. 해결책은 전쟁 뿐이다. 두 영웅이 정치생명 뿐 아니라 목숨까지 내걸고 한판 붙게 되었다. 막센티우스는 밀비안 다리를 폐쇄시켜 버리는 결단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2.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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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54년 전 1959년 11월 18일 밤 이사야서를 읽다가 11장 6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무릎을 치며 감격했다.사자가 풀을 먹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다니, 불가능 또 불가해한 말씀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1.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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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몰이 식 교회운동이 한국교회의 내용적 성장에 독이 되었음을 곧 알게 된다. 70∼80년대 대형집회를 통해서 성과를 본 후 현재는 이름하여 대형교회들이 떼몰이 식 목회를 한다. 그들은 큰 교회로 오라면서 신자들을 유인한다. 모인 자들과 함께 잔치를 하다가 거기 그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떡고물, 그 이상의 교회돈을 사용명세서도 필요없고 세금 추궁도 없을 터, 속알이나 뱃병 등 뒤탈이 없으려니 하면서 꿀꺽꿀꺽 먹어 치운다. 염불보다 젯밥이라더니 꼭 그 꼴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부 대형화를 통해서 개인의 치부와 독식 등을 제외하고는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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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1.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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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경지는 삼위일체 신앙의 고백에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세계는 그렇게 만만치 않다.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칼빈의 지식과 지혜를 다 동원한다 해도 지식의 자리에서는 불가해의 영역이다.삼위일체 잘못 건드렸다가 신세 망친 신학자나 목사들이 좀 많은가. 삼위일체 접근에 실패한 사람들은 마르키온, 아리우스, 페라기우스, 그리고 무함마드까지.오늘의 한국교회는 옥석을 가리고 교회의 앞날을 전향적으로 격려하기 위해서 바울이 시도했던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마라톤 경주 같은 노력을 해보았으면 한다. 한국교회가 지금 혹독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3.01.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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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시고, 우리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예수의 몸으로 오셨다. 감사를 뛰어넘어 이토록 감격스러운 날에 하늘의 별들아, 삼라만상아, 우리 함께 노래하며 춤추자.싸이의 말춤 보다 7천배는 더 뜨거운 열망을 가슴에 품고 노래하고 춤추자. 구세주 나신 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비천에서 영광스러움으로 우리 신분을 바꾸어 주신 날.성탄절을 앞두고, 이 땅에 주 예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아름다운 성탄절 트리를 만들어 세웠으면 한다.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2.12.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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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다. 그러나 성공이라지만 거기에는 '명예동반'이 있어야 보람과 가치가 있는 성공이 될 것이다. '성공'하자는 인간의 선한 욕망이 명예가 동반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빈 껍데기가 된다. 목사들의 경우, 목회 성공을 말할 때 목 좋은 곳에 예배당 지어 단시간에 신자 많이 모으면 성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옳은 판단이나 평가가 될 수 없다.목사의 교회는 예수의 명예동반을 필수로 한다. 목사의 성공은 의외로 신자 많이 모아서 큰교회 만들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10년 동안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2.12.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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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괴로움에서 구출한다'는 뜻이다. 지난 주간 필마단기(말 한 팔에 그 몸 의지하여)의 용맹으로 국민, 오로지 국민의 편에 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안철수(전 무소속 대통령 후보) 씨가 기득권 세력들의 철벽을 뚫지 못하고 도중 하차했다.그가 출마선언을 한 후 66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다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자긍심과 희망을 심어준 일은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해도 괜찮다는 안도와 함께 아직은 때가 아님을 간파하고 차후를 계획하려는 그의 자세가 마음에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2.12.0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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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75살에 삶의 오랜 터전을 뒤로하고 정처없는 유랑의 길 나섰을 때,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에 터를 잡고 살면서 100살이 다 되어가는데 눈 먼 딸 자식 하나 주지 않는 하늘의 하나님께, '내 이 나이 되어 당신께 무엇을 더 바라리오. 나는 다메섹에서 데려온 엘리에셀을 자식삼아 살겠소' 했을 때, 아브라함의 비아냥거림에 하나님께서 가슴을 치셨을 것이다.그러나 때가 되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따라 100살에 아들을 얻으니 그 이름 '이삭'이다. 아이고, 내 자식 하나 버렸더니 또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2.11.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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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는 개혁교회가 세 개 있었다. 첫번째는 스위스의 독일 영역 안에 츠빙글리가 지도하는 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 두번째 개혁교회는 취리히(Zurich)에서 시작되었으나 후에 아나벱티스트(Anabaptists)라고 불렀고, 제네바(Geneva) 프랑스 영역 안에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가 존 칼빈에 의해 인도되고 있었다.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는 그의 제자들 중 특히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le), 펠릭스 만츠(Felix Monz), 조지 블라우로크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2.11.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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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독교 개혁은 로마 가톨릭 내부에서부터 출발했었다. 수도원 운동 과정에서 12세기 말 피터 발도, 13세기의 성 프란시스, 그리고 르네상스 힘을 받아 영국의 존 위클립, 보헤미아의 존 후스, 그리고 1517년 마르틴 루터, 1525년 제네바 칼빈, 쯔윙글리 제자들의 반란, 이른바 재세례파의 등장이 1525년에 일어난다.그러나 그들은 수년 내에 국가주의, 정부 보호의 개혁 그룹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혔다. 이를 지켜본 로마 가톨릭은 말하기를 '지네들끼리 개혁한답시고 서로 죽이고 죽었다'고 했다. 아무튼 로마 가톨릭과 신교(프로테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2.11.07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