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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예수는 태어나기 전부터 유대교의 이단자였다. 3년 공생애 동안 단 한 번도 유대교의 호의를 받아본 일 없었고 당시 초급 율법사에 지나지 않았던 사울(후에 바울) 같은 인물과 점심 한 끼 나누어 먹으며 대화해 본 일도 없는 유대교의 기피 인물이었다. 그 예수는 끝내 유대교와 로마제국의 모략에 의해 국사범으로 몰려 십자가 죽음을 당했다. 이 모두가 예언(성경)의 말씀에 따른 길을 선택하신 것이지만 유대교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살인하는 죄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그런데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네로의 박해시대부터 콘스탄티누스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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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8.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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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만주 땅 저 멀리 발해와 고구려의 옛토까지의 광복이어야 할 우리는 지금…‘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언제부터 사용해 왔을까? 또 그 의미는 어디에서 연원해 온 가치일까? 우리민족의 상고대는 단군조선, 실제에 있어서는 고조선기에서 기록역사를 가져왔는데 고조선의 기상을 받아 고구려, 백제, 신라가 탄생하는 광할한 동북아 대륙 해뜨는 쪽의 포부를 떠올리게 하는 그 곳, 또 그 무렵부터 웅지를 품고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저 먼 옛날 정착민, 농경민시대 이전 이동민족시대부터 형성된 한민족의 시대로까지 뻗는다. 서북은 대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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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8.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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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우치고 회개하는 우리 민족, 우리 교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해 통일의 날 출발점이 오늘이기를 소원한다.BC 596년에 시작된 유다 왕국의 바벨론 포로기,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왕좌도 끝났다.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왕족들은 물론 예루살렘의 종교 귀족들 7천여 명이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포로생활을 시작했었다.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 고레스 대왕이 등장, 오로지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통곡과 눈물로 회개하는 유대 이스라엘 민족을 유심히 살핀다.고레스 가로되, 너희가 나와 같은 유일신 종교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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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7.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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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나 죽음은 인간인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거룩이요 존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너무 쉽게 그것도 스스로가 꺾어버려 많이 걱정스럽다. 물론 그 중 다수의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온갖 노력과 궁리를 다 동원했으리라. 그러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은 사람의 몫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어느 누구나 내가 세상에 오고 싶어서 오는 사람 없다. 그래서 이를 하늘 하나님의 명(命)을 받아서 태어난다고 말한다. 생명이란 하늘이 세상에 심부름을 보내서, 일감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는 날까지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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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7.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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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회자들이 인물은 있으나 인격이 없고, 명성은 있는데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인가?7월 10일자 동아일보 A22면에 “예배는 있으나 영성은 없고 인물은 있으나 인격은 없다. 건물은 있으나 교회는 없고 명성은 있으나 존경은 없다”는 김상복 목사의 발언이 기사화 되었다.동아일보와 김상복 목사의 합작품으로 이는 대단한 충격적 발언이다. 한국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진단하고 고발한 내용으로 낯 뜨거워서 읽을 수 없었다. 비참한 생각뿐이다. 우선 예배는 있으나 영성이 없으니 허공을 치는 예배요 건물은 있으나 교회가 없다 했으니 예배자들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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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7.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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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역사, 아니 더 나아가서 동북아나 세계 교회사에서도 중국의 5호 16국시대, 타클라마칸의 조그마한 성벽국가인 쿠차의 고승 구마라습 같은 실력있는 인물이 나왔으면 한다.구마라습의 부친은 천축국(고대인도)의 고위 관직에 있었던 인물인데 구도(求道)에 뜻이 있어서 관직을 내려놓고, 당시 서역이라 이름하는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요 다른 표현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조그마한 성벽국가인 쿠처 왕국으로 순례를 왔었다.쿠처 왕이 그의 인품을 알아보고 그를 탐낸 나머지 자기의 사랑하는 여동생인 공주를 아내로 주어 그를 붙잡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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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7.0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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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를 공유한 기독교는 타종교와 타인을 붙잡고 무조건 개종시키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공갈처럼 휘둘러 대지 않는다. 이슬람을 가르치려고 덤비지 마라. 이슬람은 기독교에게 배우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독교 사람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이슬람을 가르치려고 서두른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종속물이 아닌데 그런 지나친 행동을 해서야 되겠는가.어떤 이들은 이슬람의 교조 무함마드가 구약성경을 표절했다느니, 쿠란은 성경의 짝퉁이라고 우긴다. 그럼 수메르의 신화나 함무라비 법전이 성경의 한 부분과 유사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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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6.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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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서울광장에서 큰 쇼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메르스 덕분인지, 기독교 일부 단체들의 공세적 운동 때문인지 큰 사고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퀴어 운동자들을 공격하고 몰아세우고 또 정죄하는 행동을 일단 여기서 멈춰야 한다.금번 서울 광장 분위기를 보니 동성애자들이 한국교회를 물리쳐야 할 적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서 더더욱 깨달은 바가 있었다. 어찌하여 한국교회가 성(性) 소수자들의 적이요 원수가 되어야 하는가? 만약 이게 사실일 경우 교회는 크게 반성하고 자기 자신을 살펴 내게 허물이 있음이라 해야 한다.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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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6.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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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인자가 예루살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마 16:21~, 막 8:31~, 눅 9:2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감당하지 못하고 반발과 저항으로 예수의 말길을 짓밟아버린다.민망하신 예수,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무심코 지내치기에는 너무나 깊고 큰 내용이다. 다시 제자들의 마음을 열고자 했다. 제자들 중 셋, 베드로·요한·야고보를 이끌고 높은 산행에 나섰다(마 17:1~, 막 9:2~, 눅 9:28~). 높은 산언덕에서 예수는 모세, 엘리야, 급기야 하나님까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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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6.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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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세계의 타락은 성적 방종에서 왔음을 알고 있다. 현재 동성애자들 말고도 성 개방, 성의 방종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특히 6월 9일 서울광장을 동성애자들의 축제장으로 장소 사용을 허용한 서울 시장 박원순 씨를 규탄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사회 전반을 향한 거부운동으로 한국교회가 나섰다.동성애자들의 성적 장애 측면이나 그들의 편향적 정서 또한 현실적이라면 그들의 최소한의 인권이 보호되는 것은 이해하고 양해하지만 동성애 운동은 어떤 나라에서는 반시민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해 국가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고 보고 있다.한국사회가 어느덧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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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6.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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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공생애 막바지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예고하셨다. 거듭 세 번이나 말해 주었으나 제자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고 거듭 말씀하실 때는 그 말씀 듣는 것까지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했었다.예수는 십자가 죽음 너머 제3일에는 다시 생명의 날을 회복하셨고 그 날을 하늘로 옮겨 오늘도 하늘 땅 모두를 보좌로 삼으시고 우리를 지도하신다.그러나 제자들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에 두기보다 자기들이 이해하고 정리한 경험과 교리를 금과옥조 삼아 온 세상을 심판하고만 있다.어떻게 하면 어리석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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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5.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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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도 십자가의 예수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주님의 노여움을 부르기도 하고 자기 신앙의 열매 맺기에 실패하기도 한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마다 이 말씀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모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하셨다.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들려주는 대로 말했다.어떤 이들은 엘리야, 예레미야 또는 그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도 이미 알고 있는 민심이었다. 정작 예수께서 궁금한 것은,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있었다. 평소 제자들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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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2015.05.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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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행사의 날이면 사람이 그립고, 그 그리운 사람들을 한 장소에서 만난다.주 예수의 이름으로, 여보시오. 오랜 만이오. 반갑소. 잘 지내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이 친구, 저 사람들을 만난다.창업 행사를 매년마다 하는 것은 긍휼과 연민, 주 예수의 가난에 매달려 그래도 천 년을 살아서 열매되자는 ‘들소리’가 그리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를 영적 호흡이라 여기면서 만나게 됩니다.아직은 이렇다 할 열매의 모습이나 흔적을 내지 못하면서도 마치 열일곱 살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이 잔치를 여는데 그때마다 찾아와 주신 축하객 모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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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5.05.0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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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진리, 생명이라 하신 예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 같이 나도 너를 보낸다 하시면서 한량없는 신뢰로 나를 위로하시며 지켜주시는 이를 따라서 이 길을 걷는다. 부르시던 날 밤 이사야 11장을 읽다가 6절 이하부터 8절까지 몇 번 반복해서 읽었다. 이만한 포부면 새 역사의 그림으로는 괜찮다는 판단을 하면서 며칠 밤낮으로 거듭 기도하다가 ‘들소리’라는 새로운 복합단어 하나를 만들었다.‘들’을 하나님의 면전이라 했을 때 삼위하나님과 천사장 급들의 대화에서 나왔을 법한 말씀. ‘그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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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5.04.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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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현재형은 믿는 자의 부활신앙의 체험에서 구체화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는 예수와 동반 죽음의 경험(갈 2:20)을 가진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영생자의 징표다. 다시 죽을 수 없는 생명력은 역사 무대에 선 크리스천의 삶에서 표현되는 신비의 현장이다. 부활절이 지났으나 기독교의 삶의 현장에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중생의 경험마저 없는 신자들이 유령들처럼 흐느적거릴 뿐 공허하고 미신스럽기까지 하다.예수의 죽음을 온몸으로 경험한 신자들아, 바로 당신들에게 기대가 있는 예수를 바라보라.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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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5.04.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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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오후 1시 30분쯤, 대학로 거리를 걷다가 마로니에 공원에 들렀다. 도심 한복판에 이만한 크기와 시설을 가진 곳이 드물 것이다. 서울대가 관악산 기슭으로 이사한 덕분에 마련된 장소다. 평년 기온으로 5월 초에 해당하는 3월 21일은 아주 넉넉한 봄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주말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 나도 자리 잡고 앉아서 사람 구경도 하고 시설들도 살펴본다.나의 시선이 독립지사 김상옥 님의 동상에 꽂힌다. 그의 생애를 떠올려 보려는데 낯선 목소리가 나를 찾는다. 내 앞에 남자 둘하고 젊은 여인이 나타나서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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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5.03.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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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구성원의 기본은 평신도와 목회자이다. 구약에서 제사장과 신도로 구성했던 이스라엘의 제사종교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는 회당장과 신도 또는 랍비와 신도로 구성된 유대교시절을 지나왔다. 이후 메시아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되시고 오순절 성경강림과 함께 이룩한 교회시대는 평신도와 평신도 연합시대가 한동안 유지되다가 중세 암흑기 1천년을 경유하여 드디어 16세기 종교개혁기에 뜻있는 개혁자들의 투지와 천재적 발상으로 만인제사장 시대의 선언에까지 이르렀었다.그러나 만인제사론은 겨우 8년을 견디어내다가 1525년 독일의 농민반란 여파와 재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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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2015.03.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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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 그 출발점은 여기다. 하나님의 품에서 나와 임마누엘 된 인생은 여기서 너를 기다린다. 여기 내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고통 무한의 시간을 견디면서도 너와의 동행을 위하여 내가 여기서 기다린다. 바로 여기가 그래서 ‘양의 문’이다. 이 문을 통해서 믿는 자의 길이 열리고, 이 길 곧 십자가를 외면하는 자들이 갈 곳은 어디겠는가? 배신의 길. 위선의 길, 또 거짓의 길이니 그들 십자가를 외면하는 자를 어찌할꼬.사람들은 종종 스스로 속는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신 분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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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2015.02.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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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도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하여’, 또는 ‘역사 예수의 현재’를 발견해야 한다.어려운 말이다. 말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이란 바울 선생의 용법인데 믿는 성도의 최대 가능성의 표준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준까지’라는 뜻의 표현이다.얼마 전 여론 통계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 중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신뢰도가 타종교에 비해 뒤진다는 수치가 있었다.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신뢰도를 높여야 하겠다고 다짐한다.신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신자 중에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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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5.02.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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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독일 마르부르크 성에서 루터와 멜랑히톤 등 독일 대표들과 쯔빙글리, 오이콜람 파디우스 등 스위스 대표들 수십 명이 ‘성찬론’에 대한 회담차 모였다. 그들 비텐베르크와 취리히 대표들 간에 팽팽한 접전이었다. 10월 1일 금요일부터 3일 밤까지 때로는 진지하고 또 격렬하게 토론했다. 자칫 파국이 올 수도 있는 지경에 몰리기도 했으나 그들은 방청객 자리에 앉아있는 일반 신자들 때문에 인내를 거듭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마르부르크대학교 의학교수 유리키우스 코르두스(Euricius Cordus)는 통렬한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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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5.02.05 1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