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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을 말할 때 그 저자(기록자)가 누구이며 기록한 장소가 문제된다. 기본적인 사안이면서도 다른 복음서에 비해 요한복음은 저자가 누구냐에 대한 견해가 각각이다. 이는 저자(author)와 기록자(writer)를 구분해야 하기에 그렇다. 저자의 경우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서는 일단 한 사람의 저자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요한복음”이니까 제자들 중 떠오르는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 요한인데 그 기록연대가 AD 90년 이후로 잡을 경우 너무 노쇠한 시기가 아닐까에 트집 잡히기도 한다.공관복음서와 달리 전체
사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2019.02.2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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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곤륜에서 꿈을 편 나라 백두 장백 얼싸 안고 홍익의 얼, 드넓은 우주의 공간을 휘어 감는다 했었죠.이제 우리는 한반도에 갇혀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그나마 허리 동강난 채 70여 년 죽지 않고 살아왔는데, 드디어 복병을 만났어. 우리는 사이비 민주주의자들과 거짓 사회주의 틈바구니에서 사람 목숨 우습게 아는 자들을 향해 서러운 미소도 지어야 하는가.살아있는 하나님, 그 발걸음으로 우리 곁에 오신 예수와 함께 또 한 번 죽은들 별거냐.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 우리들 그리스도인은 죽음으로 생명을 사는 법을 안다.베들레헴에서
사설
논설위원
2019.02.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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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 생각보다는 더 빠른 시간에 북한지역 선교 문제가 돌출현안으로 등장할 수 있다. “비핵화” 문제가 가닥이 잡히고 남북한 내부 관계가 설정되면 종교 간의 교류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가톨릭은 이미 논의가 오고 가고 있는 교황 방문으로 길이 열릴 것이고, 불교의 경우는 이미 북한에는 불교가 활동 중이다. 기독교의 경우는 WCC 방식과는 또 다른 북한의 지하교회와 한국의 보편 교회들이 만나는 선교의 순기능이 움직이는 날을 준비해야 한다.아마, 잘은 모르지만 북한의 최고 지도자와의 대화가 먼저 열려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자유세계
사설
논설위원
2019.02.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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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보다는 “메시아”가 익숙하여 늘 메시아로 예수를 호칭한다. 구약의 흐름 속의 메시아는 기독교 역사가 규격한 예수의 본 모습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마치 태양 빛 빛살처럼. 그럴 것이다. 태양에 비추이는 예수, 또 발광체 그 자체로서의 메시아가 낯설게 표현되어 보일 수 있다. 더구나 시간대에 따라서 새벽 미명의 빛살에 나타난 예수, 낯 시간 그것도 오유월 태양이 내 정수리에 꽂히는 듯 그토록 절박할 때 내 시야에 잡힌 예수, 석양 노을빛에 비추이는 예수 모습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언어의 역사를 보니까 인간만 언어가 있지
사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2019.02.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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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면 대한민국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 4월에. 우리는 오는 해 국회에 들어가서 대한민국의 대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고, 국가의 위신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의회 구성원 300명”을 선택해야 한다.여당이나 야당 등 특정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능력과 실력을 갖춘 인물들, 영국·미국 수준의 국회 인물들을 교회가 눈여겨보아야 한다. 겨우 자기 당의 이익에만 눈이 먼 사람이 아닌 통일대한의 기초석을 튼튼하게 놓을 수 있는 인물, 대한민국을 고조선이나 고구려 전성기만큼 강성하게 이끌어갈 인재를 교
사설
논설위원
2019.02.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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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회는 각 교단별로 세심한 조직 확인과 관리에 들어가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버리고 3.1 만세를 부르다가 또 생명까지 빼앗겨버렸던 날, 저 아득한 1백 년 전 그때 그 숨 가빴던 날을 떠올려 보라. 이스라엘이 애굽 노예 430년 만에 모세의 지도를 받으며 홍해를 건넜다. 그들은 광야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민족 구성원 숫자를 헤아렸다(민 1:46).조직 관리다.한국교회는 각 교파들마다 교회, 교인, 직분자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헤아리고, 교회들마다 그 위치를 세심하게 파악하여 교회가 맞이할 수 있는 교회당 밖의 이웃들을 어떻게
사설
논설위원
2019.02.2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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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운동력은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 자결론”에서 나왔다. 잠시 근세사 발전의 속도와 개항기 대처에 얼마간 준비가 부족했던 대한조선은 동북아의 선두를 일본에게 내주고 고전을 하다가 그들의 속방이 되었다.2019년, 3.1운동 그때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은 우리도 일본 못지않은 외교력과 경제력이 있다. 다만 군사 기술력이 얼마간 일본에게 뒤진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교회의 힘이 있다. 한국교회 저변에 자리한 프로테스탄트 형 운동은 핵무기나 일본의 잔재주를 뛰어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오늘의 대한민국 교
사설
논설위원
2019.02.2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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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그때 우리들 교회는 용감했었다. 타종교나 미신자들과도 한 몸처럼 오로지 잃어버린 나라 찾기에 생명과 재산을 내던졌었다.오늘도 3.1절 그때처럼 암울하고 답답한 일들이 많다. 그저 살고자 하니 목숨을 내던지고 예수 다시 배우고 싶다. 그때를 떠올리며 몇가지 생각을 적어본다. 첫째, 교회의 정치행위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새 대표를 선출했다. 대표회장이 정치력이 있는 분이라 혹시 이 단체가 정치세력화 하면 어찌하는가, 하는 걱정이 있다.정·교 분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회 소속 신자들이 정치 하고, 사회운동을 할 수
사설
논설위원
2019.02.1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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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도 사설로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면구스러운 제목이다. 중 제 머리 못 깎는다 했거늘, 세상이 많이 바뀌었나 하면서 훑어주기를 바란다.요즘, 분명히 하수상한 세월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당국자들이 하는 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뭔가 냄새는 나고 심증 그 이상의 조짐은 무르익어 가지만 사람들은 설마 하면서 미동도 없다.교회들은 벌써 긴장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더 조용하다. 이미 엿을 먹어버렸나? 아니면 혼이 나가버렸나?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한 그리스
사설
논설위원
2019.01.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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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는 시간. 아니 벌써, 했을 때는 늦는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좋은 날을 기다리는 자들이여.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 성경의 기록처럼 말이다. 돈으로 안 된다. 쇼맨십으로도 안 된다. 적당히 안수해도 안 된다. 안 되고 안 되는 것뿐인 날이 올 수도 있다.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넘기지 않으시는 분이다.우리가 생각해도 한 번쯤은 거르고 넘어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있는 시간이다. 지난 시절, 자유당 시절에 사바사바가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입장이다. 호리라도 거기서 다 갚기 전에는 나오지
사설
논설위원
2019.01.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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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번째입니까? 단체 통합한다는 말을 얼마나 더 하려는가? 도무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가? 그만두시오. 지금 만들어진 꼴대로 양심껏 자기 존재의 필요성이나 찾아보시오. 세월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단체 통합보다는 그 단체를 해체하는 것이 훨씬 쉽고 공익이나 전체 교회를 위해서 더 유익한가도 생각해 보라.100년 전, 1919년 3월 1일, 우리들의 3.1운동을 일으킨 기폭제가 한국교회였고, 전국 조직망을 동원해 민족 모두의 동원력까지 확보해 침략자 일본은 물론 자유세계 전체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바로 그때로부터 우리 대한국
사설
논설위원
2019.01.2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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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접근법사상적 접근법이고 역사적 접근법이다. 역사 속에서 사상이 영그는 것이니까 사상의 몸체인 역사를 생각해본다. 기독교 계몽기 아들들은 주로 후기 헬레니즘에 맹목성에 대개 약하다. 그래서 헬레니즘 초기를 알렉산드로스의 출사에 시기를 맞췄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후기 몫이다. 그들은 요한복음서간 말이지 겨우 헬레니즘의 한 아류인 거야…, 하면서 어깨에 힘을 주려 하지만 그들이 이 말씀 어디에서 “헬레니즘”을 찾는지 도무지 알 수
사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2019.01.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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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번뜩, 크게 보이는 글자가 1장 9절이다. “…나는 홀로 너희 짐을 질 수 없도다”라고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광야생활에서 홀로 큰 탈 없이 자기 백성을 이끌어 왔던 불세출 지도자 모세가 가나안 시대를 앞둔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중에게 조직력을 강화를 요청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 이스라엘은 머지않아 지금보다 천 배는 더 크게 확장될 것이다. 둘째, 원주민들 가나안족들 틈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셋쩨, 지금까지는 광야의 한정된 지대 안에서 생존에만 몰두했으나 오늘 이후는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사설
논설위원
2019.01.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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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못했고,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반도에 유사 평화기류가 형성되어 생각 짧은 사람들 마음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지난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 보고관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는 “북한은 나라 전체가 감옥”이라고 했다.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까? 대한민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제법 행세한다는 사람들 입에서 통일되면 북한 핵이 우리 것인데… 라는 말을 하더라. 나만 그런 말 들었는가 했더니 많은 사람들 입과 귀에서 놀고 있는 싸구려 만담 같은
사설
논설위원
2019.01.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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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또 북남의 화해조성 분위기를 생각할 때 한국교회가 연초에 김정은 북한 실권자에게 북한선교 제안을 정중히 요청할 필요가 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가 관행적으로 북조선 기독교와 협의 사항을 찾고 우의를 다지는 것을 뛰어넘어서 한국교회의 총의를 모아서 북한선교 요청을 하는 것은 지혜다.북한은 “인권문제”를 들먹이면 살벌해지니까, 인권의 또 다른 의미로 기독교 선교사를 받아 달라, 또는 1945년 이전의 교회들을 복원하기 위한 원칙을 제안하는 등, 복음 선교로 저들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라는 것은 이미 정치적 먹
사설
논설위원
2019.01.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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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을 공부할 때꼭, 조심해야 할 언어는 헬라,헬라사상, 헬레니즘사상사의 발전과정에 대한이해가 있어야 한다.헬라와 그리스가동의어가 되겠으나 헬라사상은… 1. 사상적인 접근법1절에서 18절까지 읽어본다. 거급 읽어본다. 무심코, 매우 안정된 마음제세로, 또는 청정한 마음자세로 읽어본다. 모든 개개인들마다 그들이 평소 지니고 있는 소양, 인품, 수양, 수련, 자기 학문의 성격이 있는 사람들은 긴장하기도 할 것이다.아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전후좌우의 가닥을 헤아려 문장의 균형을 잡아 보려다가도 힘이 달리는 것을
사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2018.12.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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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여 년 한국의 정치판을 살펴보니 전문정치인, 또 품격 있는 정치인이 너무 모자란다. 조금 싹수가 보이는 이들은 견제 받거나 독이 뭍은 고기를 함부로 먹다가 감옥행으로 끝나기도 했다. 지난 촛불사태까지 보면서 정치인 양성이 필요함을 절감한다.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대부분 목회자나 신학전문인 양성을 위해서는 기꺼이 투자했는데 앞으로는 목회전문가는 물론 정치, 경제, 과학도의 전문양성을 위해서 교회의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를 느낀다.국내외 선교부분 예산과 목회, 그리고 장학예산을 동등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외선교 부
사설
논설위원
2018.12.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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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말기에 대 박해로 26명이 나가사키 현 형장에서 순교했었다. 그때 숙부 2명과 함께 붙잡힌 루도비코 이바라기, 12살짜리 어린이가 형리들이 너는 눈감아 줄 터이니 비켜서라면서 구제해 주는데, 이 아이가 거부한다. 그ㅁ의 숙부들과 기리시탄 동지들마다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죽어가는 한순간, 이 아이가 달려온다. “내 십자가는 어디 있나요?” 하며 허우적거리면서 형장으로 달려온다.형리들이 하는 수 없다 하여 이 아이를 십자가 형틀에 묶어 목을 치려는 순간, 하나님! 예수님!을 외치면서 환한 모습으로 이
사설
논설위원
2018.12.2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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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나님의 품속에서 세상에 뛰어드신 예수는 “종교인”들로부터 극심한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 우리 대한민국에 보냄 받은 한국교회도 증오와 질시, 차별과 혐오가 비교적 많이 발생한 시대 앞에 서게 되었다.다 무너지던 조선 왕조가 속절없이 일제에게 먹히던 속방 시대의 문턱에 들어서던 그때 우리는 이 땅에 와서 허겁지겁, 속방과 분단, 전쟁과 군벌체제를 겪으면서 숫자는 1천만 명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유약하다. 비교적 순박하기는 해도 체질이 약하고 순박한 한국교회가 지금 체제주의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
사설
논설위원
2018.12.2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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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출석 기피 신자들을 70년대에 “안나가” 신자라고 했었다. “안나가”는 “가나안”을 거꾸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가나안 신자”라는 이름으로 둔갑해서 사용하던데, “가나안 신자”가 교회 출석 기피신자일 수 없다. 더 이상 “가나안 신자” 호칭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안나가”로 표기하면 “가나안”의 도치법 어휘가 되기도 하고, 유머의 공간도 있어서 괜찮은데 교회주의자들의 교회생활이 싫은 “안나가”(교회 소속을 꺼리는 사람들, 또는 술, 담배 문제가 번거롭고 본인의 생활이 불규칙하거나 등의 이유로 교회 출석을 피하
사설
논설위원
2018.12.19 1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