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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 정부는 전에 볼 수 없는 거대한 남북관계 개선안을 세계 앞에 제시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 중에는 한국 정부는 북한의 대변인 같다고 했다는데 (조선일보 2018. 10. 1일자, 최보식과의 대담에서 김희상 한국 안보문제 연구소 이사장 발언), 지난달 유엔 총회 기간의 한국 대통령 발언을 종합한 듯한 내용을 폭스(미주 주요 언론사)가 표현해냈다. 한국 대통령의 실명으로 한국은 북한의 대변인(Top speakers man) 같다고.듣기에 따라서는 한국인 전체가 자존심 상하는 내용이었으나 모두가
사설
논설위원
2018.10.0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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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총회에서 예장통합과 예장백석·대신 교단에서 기장 소속인 임보라 목사의 신변에 대해서 다시 결단을 내렸다. 예장통합은 이단성이 있다 했고, 예장백석·대신은 이단으로 정죄했다. 2017년 8월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백석·대신, 예장고신, 기감, 기성, 기침, 예장합신 등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회 위원장들 결의로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 주장을 한 일이 있다. 이 일로 임 목사 소속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본부를 방문하려 했을 때 기장 측은 크게 반발했었다.그 이유는 특정교단 소속 목사의 신학과 신앙의 성격을 시비할 때
사설
논설위원
2018.10.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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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 동·서로마 교회가 서로 경쟁하다가 결국은 1054년 교황 레오9세의 사절 단장 홈베르트 추기경은 동로마 총대주교 케룰라리우스 앞에 “영구 결별장”을 내던졌다. 그때 곁에 있던 누군가가 “하나님의 교회는 ‘연합공동체’ 이다. 당신들처럼 독점에만 눈이 먼…” 이라고 소리친 일이 있었다. 당시 동로마 콘스탄티노플 총 대주교좌는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총 대주교좌의 “연합 공동체의식”을 가졌었다. 이 의미가 확대되었을 때는 위의 총 대주교좌에 앗수리아, 수리아, 이집트 콥틱, 에치오피아, 아르메니아 총 대주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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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18.10.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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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족사회 아니다. 1차 산업사회도 아니다. 그런데 촛불세력 집권 1년 반쯤을 지켜보니 이 정권은 국민(사람)을 바보천치들로 아는 자들이 실세들 속에 다수 층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혹시, 김대중을 아는지 모르겠다. 김대중은 야당지도자로 있을 때나 대통령 때도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야 한다”고 했다. 내 귀로도 직접 들었다. 그 뜻이 무엇인가?국민들은 나 김대중 비슷한 수준이다, 라는 뜻이 그 속에 있다. 인간이란 때가 되면 “겸허”할 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은 정부·여당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 대개는 다 안다. 보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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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18.09.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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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제자들 몇몇과 함께 거닐 때, 바리사이들이 달려와서 “선생! 따르는 자들이 적은가?”라고 걱정 반 비웃음 반으로 시비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예수 가라사대, “좁은 문으로, 좁은 문으로…”였다. 좁은 문이 좋다. 인생 백년 공부해야 예수의 계신 곳 문턱 넘을까 말까 정도인 줄 알아야 한다.한국교회와 함께 60여 년 동행해보니 전 같지 않고 요즘은 너무 서두는 사람들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길 지경이다. 목회도 그렇다. 제자 열둘 붙잡고, 그들을 가르쳐보려고 애쓰시던 예수님을 생각해보라. 복음서를 자세히 읽으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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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18.09.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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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 세습” 문제가 자칫 엉뚱한 화근이 될 수 있다.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의 상상력에 도움을 주다가 결국은 집안이 통째로 쑥밭 되는 수가 있다.문민정부 시절부터 손 좀 볼까 싶다고 했던 “교회재벌” 이야기다. 아직도 우리는 가끔씩 은어 비슷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제3공화국과 유신시대에 많이 해보았던 은어, 농아인의 수화, 또는 밖에 나가 공중전화 사용하기 등등…. 요즘은 갑자기 등장한 “촛불정권”의 적폐몰이가 만만치 않으니 사람들이 그래도 조심조심한다.명성문제로 통합교단 총회가 제1KBS 저녁 9시 뉴스에 대문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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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18.09.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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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우리는 1945년 광복을 맞이했다. 또 한 번 더 큰 은혜로 부득이 38년 이남의 대한민국 유일 합법정부가 한반도 위에 등장하여 그때 1948년부터 금년까지 많은 시련, 시행착오, 민주주의 응용능력 미숙, 좌파와 만나는 반독재 반군부 세력의 거대 집단화를 통해서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민주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그러나 돌이켜 보면 남북 분단의 장기 평행선은 민족의 이질감을 촉진했고, 아직도 남북 이산가족의 완전한 안부확인마저 되지 않는 등 분단현상의 고착화가 금번 갑자기 들어선 정부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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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18.09.0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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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사람, 사람 찾기가 쉽지는 않다. 한때는 인물이 그리워서 사무실 인근 초등학교 등하교길에 교문 가까이 서서 드나드는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혼자서 메모도 하고 그 모습들 중 인상 깊은 아이들을 가볍게 그려보기도 했었다.사람이 그립다. 그러나 사람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가다듬어 길러보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한때 나는 만나게 된 사람들 중 가까이 하려고 하고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이들 몇몇인가를 쫓아버린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필자가 세상 물정을 다 몰랐었다는 후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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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18.09.05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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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교단들이여, 대의원들 중심이기는 하겠으나 일상의 목회현장을 떠나서 동역자들이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직·간접 안부도 들으면서 목양에서도 오는 스트레스를 어느만큼 해소할 수도 있겠다. 계절마저 추수기, 또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이 가을에 어떻게 하면 교회들의 수준을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만큼 높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겠다.올해도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를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주기는 쉽지 않아도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분량이 있다. 예수님의 활동을 가만히 살펴보면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책망하시기도 했지만 또
사설
논설위원
2018.09.05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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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D일보를 펴서 늘 읽던 ‘3.1운동 역사현장’ 제14화를 읽었다. 민족 대표들이 내란죄로 몰려 감옥생활이 어려웠다. 고등계 형사들이 온몸을 발가벗겨 놓고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기, 코에 고춧물 붓기,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리고 구둣발로 짓밟기, 손·발톱 찌르기와 뽑기 등 악랄한 고문을 했다.어느 날부터 민족대표들이 극형에 처해진다는 얘기가 나돌아 감옥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었다. …고문에 못 이겨 민족대표들 중 서서히 허물어져갔다. 어떤 대표들은 공포감에 싸여 대성통곡을 하거나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설
논설위원
2018.08.2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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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가 그리 되었소. 차라리 우리는 사정상 설립자가 몇 년도 교회를 이끌면서 후임자를 찾겠소. 오겠다는 목회자, 또 마땅한 목회자가 없는데 어찌하라는 겁니까? 이렇게 솔직하게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정년퇴직을 했다. 그러므로 혈육이 담임자가 된다 해도 세습이 아니다(?) 참으로 해괴한 법 논리다. 자유당 때 사사오입 개헌파동은 있었고, 세상에는 크고 작은 말장난 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명성교회 문제로 재판하면서 재판관들의 법 논리 중에 2년 전 퇴직했고, 담임목사가 없는 상태에서 나타난 후임자니까 전임
사설
논설위원
2018.08.2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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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교단들이 신자의 숫자가 줄었다며 그 증빙까지 내놓고 있다. 그럴 것이다. 시대 전환기에 앞장설 수 없으니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다.현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건드려도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대한민국” 유엔이 승인해 탄생한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내용마저 삭제하려드는 2019년도 초·중등 역사 교육과정을 이미 확정했는데도 그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한국교회는 예수의 표현대로는 평토장한 무덤 수준이다.한국교회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북한과 비교해보라. 북한에는 숨어서 신앙을 지키는 사람은 있겠으나 교회는 없다.
사설
논설위원
2018.08.2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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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왕조 사마리아가 앗수리아 제국에게 무너질 때, 그때부터 앗수리아는 남 왕조 유다를 겨냥했고, 신 바벨론 시대가 도래해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국을 집어삼켰다. 그때 유다 왕국에 인물이 없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스기야 왕이 있었고, 선지자 중에 최고봉이었다는 이사야가 있었고, 예루살렘에 선지자가 500여 명 있을 때 혼자서만 정직한 예언을 한 예레미야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을 버리셨다.그때부터 유대-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 시대”가 500여 년 지난 후 메시아 예수가 등장했다.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공산주
사설
논설위원
2018.08.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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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구차한가?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고, 건강도 견딜 만하고, 우리 교회는 나와 손발이 지금 잘 맞는 단계이니 내가 10년 쯤 더 목회하고 싶다고 전국교회 앞에 호소했으면 더 인간적이지 않았을까? 노회와 총회 간의 재판절차나 나는 퇴직한 지 2-3년 지났으니까 담임목사 영입절차에 세습 대상이 아니다 등까지 동원하면 어찌하겠다는 것인가?한국교회 세습파동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고향이기도 한 유럽이나 미국은 세습시비가 없다. 그들은 자기 자식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고 자식이 아버지의 목회지를 승계 받으면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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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18.08.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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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일본에게 제국을 빼앗겨버린 1910년 이후 우리는 겨우 1948년 8월 15일 유엔으로부터 유일 합법 정부 승인을 받으며 건국을 했다. 개국이다, 건국이다, 수립이다라는 말의 뜻은 똑같다. 그런데 “건국”이라는 용어를 문제시 하고 “정부 수립”을 고집하는 세력이 지난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건국이 아니고, 국가 수립도 아니며, 한반도 일부의 남쪽에 세운 나라를 “건국”이라 할 수 있느냐?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한반도 북쪽이 분단의 상태로 남아있는데 감히 건국이라 할 수 없다는 요구다.
사설
논설위원
2018.08.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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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절에-광복절이다. 졸지에 나라를 빼앗기고 종노릇해야 했던 우리들의 부모님 이전 시대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역사책이나 드라마를 통해서 일본을 안다. 임진·정유난리에 우리 조선은 일본에게 무자비한 학대와 학살을 당했다. 그때 이후 우리의 선인들은 “차마,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왜놈들, 쪽발이 놈들!!”을 한스럽게 울부짖으며 살아오다가 또 경술국치로 일본제국에게 나라를 완전히 빼앗겼었다. 그리고, 광복이다. 사무치게 그립고 간절했던 내 나라를 하나님이 찾아주셨다. 1945년 그날 이후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일으켜서
사설
논설위원
2018.08.08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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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개항시대 일본은 유럽형 선진국 대열에 있고, 우리는 개항을 할 수 없었다. 국가 자본이 없으니 개항을 했다가는 당장 외국과 통상관계를 열어갈 수 없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로 기고만장.우리 대한제국은 11910년 경술국치. 나라를 일본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후 36년 동안 일본의 속국으로 살았고, 광복을 맞이했으나 해방의 감격을 누릴 사이도 없이 국토 분단, 하는 수 없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그래도 유엔의 승인으로 국권 상실을 38년 만에 반쪽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창달을 목표로 국가수립
사설
논설위원
2018.08.0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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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여름, 혹독한 더위는 끝내 제풀에 시들해지고 가을 향내가 코끝을 만지작거리네. 떠들고 웅성거렸으나 몇 개 안 되는 감투나누기로 끝날 그런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무더위 속에서도 기도의 자세를 잃지 않은 형제와 기도와 금식에는 뒤지지 않을 자매들과 함께 8월의 절반쯤 보냈다. 아직도 피서지의 즐거움을 내려놓지 못하면 가을 열매가 문제된다. 일 년 살림은 봄에 준비하는 법인지라 지금 이 시간 가을 소득 암산해보아야 뭘 하나. 아니야, 그래도 가을의 초입, 바로 지금이 중요하다. 초복, 중복, 말복을 건너면서 봄 씨앗 가꾸어 이
사설
논설위원
2018.08.0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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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대 국회 당의 공천에서 1차 탈락되었을 때, “허허!” 하면서 헛웃음을 흘리던 문희상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면 20대 의회 진출정도는 당연시 되었을 위계였는데 공천 1차 탈락 소식을 들을 때 허허, 했던 그 탄식은 “정치무상!”이라는 뜻이었을 그가 감계무량하게도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다.관록 있는 의회주의자 답게, 2년차 정치주도는 “청와대에서 여의도로 귀환”한다고 선포한 그 말 정치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다. 지난 탄핵정국 전후로 국회가 다 죽어버린 줄 알았으나 이제는 의
사설
논설위원
2018.07.25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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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외형역사가 1885년 출발이다. 그때 제물포항 부활절 아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대한제국 선교사로 왔다. 그런데 아펜젤러의 감리교단은 기감과 예감 하나씩 교단이 둘이다. 그런데 언더우드의 장로교단은 공식 250여 개 교단, 비공식까지면 300에서 400여 개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이쯤 되면 모든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한 번쯤 존재론적 자기 검토가 있어야 한다. 왜 그런가? 과연 예수에게서 교파를 300개 이상 나누어서 살림해도 되는 것인가? 아마,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합동과 통합이 크게 책임을 져야 하고, 기장이나 예장
사설
논설위원
2018.07.25 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