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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97주년-특집(3)] 오늘의 교회를 향한 염려와 기대루터 “면죄부는 인간적인 교리, 탐욕 부추기는 행태” 비판외형적 종교 틀에 연연하는 교회, 종교개혁 이전 모습 여전만인제사 “하나님이 주인인 백성 공동체”로부터 출발해야 종교개혁 500주년(2017년)을 앞두고 교단이나 단체별로 이를 기념하는 대단위 행사와 서적 발간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에 종교개혁 정신은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 종교개혁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완인 채로 남아있다는 것이 교회를 걱정하는 뜻있는 이들의 진단이다.500
기획특집
정찬양 기자
2014.10.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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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97주년-특집(2)] 개혁의 중심에서 멀어진 루터 때는 1525년. 루터는 그를 흠모하는 카트리나와 결혼했다. 그가 1483년생이니 그해 루터의 나이는 42살. 중년의 나이다. 그는 비텐베르크의 수도원에서 숙식하며 살아왔으나 점점 그 자신을 돌보는 가사 노동이 싫어졌다. 침대를 청결케 하고, 자신의 속옷을 빨아 입는 것도 싫었다. 그의 이중구조의 살림살이가 시간이 갈수록 싫었다. 제후들이나 왕들, 심지어 가톨릭의 주교나 대주교들마저 그를 우러러보는데 의식주 생활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이 많이 무능해 보였다. 루터의 대외
기획특집
조효근 목사
2014.10.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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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97주년-특집(1)] 특별기고-종교개혁의 원리대로 살자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이며, 복음진리의 핵심정신이다. 오는 10월 31일은 종교개혁 497주년이 되는 날이다. 3년 후인 2017년이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한 행사들을 미리 계획하느라 분주해 보인다. 부디 의미 있는 행사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기획특집
정성욱 교수
2014.10.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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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비춰보면 동성애 죄악, 입법화 되면 강단에서 설교하다 처벌될 수도동성애 입법화 되지 않도록 100만명 서명운동에 교회, 성도 적극 동참해야95% 동성애 반대자 중 행동하는 자 0.5%, 동성애자들 5%는 모두가 적극자지난해 WCC ‘제10차부산총회’를 반대해 왔던 WCC반대운동연대가 올해는 로마 가톨릭 교황정체 알리기 운동연대로 전환하여 가톨릭과의 일치에 대한 실상을 밝혀오다 최근에는 동성애 반대운동과 병행하여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조직위원장 송 춘길 목사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동성애 차별금지
기획특집
양승록 기자
2014.10.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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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에게 주어진 두 큰 일감70년대에 들어서며 함석헌에겐 두 가지 큰 일감이 주어진다. 하나는 함석한 자신이 일생의 일감이라고 고백한 월간〈씨알의 소리〉창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함석헌 자신과는 상관없이 외곽(?)에서 출범한 ‘성서·동양학회’(聖書·東洋學会)가 그것이다. 〈씨의 소리〉는 창간되어 4, 5월호를 내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폐간조치를 당하게 되는데,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시동된 것이 ‘聖書·東洋學会’다. 함석헌의 〈씨의 소리〉가 박정희군사 정권을 정조준하는 언론기구의 하나였다면 ‘聖書·東洋學&
기획특집
문대골 목사
2014.09.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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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정치가는 백성들로 하여금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일깨워 가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정치한다는 자들 중에 민(民)으로 하여금 죽음을 가지고 겁먹게 하는 자들이 있다. 역사는(하늘은) 이런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한국의 예언자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군사반란 이후 군부정치(?) 30년 동안 민주회복을 외치는 사람들,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해 반독재의 전선에 선 사람들은 물론, 이름없는 맨 바닥의 민초들의 세계에서까지 함석헌의 이름은 갖가지로 회자(膾炙)되었다. 사상가, 종교가, 철학자, 한국의 간디, 민중의 지도자
기획특집
문대골 목사
2014.08.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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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 싸움, 고소 난무…세인들에게 교회 이미지 식상케 해교회 오면 살맛 나고, 용기와 희망이 생기는 공동체 형성해야전도, 선교, 봉사에 쏟는 열정, 주님 오실 때까지 늦출 수 없어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음(福音)’은 내가 죽어 상대방을 살리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입니다. 교회는 이 사회와 신자들에게 사랑과 격려, 위로,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해야 하는데, 막상 교회 가면 다투고 싸우는 통에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시장판에서 싸움이 나면 ‘싸우려면 교회에 가서 싸우라’는
기획특집
들소리신문
2014.07.3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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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인물 살피며 역사 인식 새롭게 고취시켜▲ 제14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 과분한 소식을 전해주셔서 얼른 대답을 못했어요. 일단 작품이 책으로 나오거나 발표되면 그 기쁨이나 보람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습니다. 사실 책이 출간된 후에는 더 이상 표지도 열어보고 싶지 않거든요. 후회스러운 부분도 많고 오탈자라도 눈에 띠면 속상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요. 수상소식을 듣고 작품에 대한 송구스러움이 우선 느껴졌어요. 몇 시간쯤 흐른 다음에는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기획특집
정찬양 기자
2014.07.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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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어른들께 책 읽어드리며 ‘문학 꿈’ 키워인간다운 삶 천착-삶의 질 높이는 작품 쓰고파 ▲ 제14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통지를 받고 전혀 생각지 않았기에 좀 놀랐습니다. 제 작품을 선정해 주신 들소리문학상과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수상하신 작품 은 어떤 배경으로 쓰신 작품입니까.- 사람들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과실치사 과거가 있는 ‘동철’에게 혐의가 집중되는 과정을 통해 독단적인 유추와 추리, 또
기획
정찬양 기자
2014.07.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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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에게 있어 간디는 그렇게 ‘기대어온 언덕’이었음에도 함석헌은 그 약속의 땅 인도를 목전에 두고 또 하나의 약속의 땅을 찾아 되돌어와야 했다. 미국의 초청으로 고국을 떠날 때 함석헌은 약 3년여의 ‘나그네살이’(해외여행)를 계획하고 출국했었지만 그마저도 그에겐 여의치가 않았다. 박정희의 소위 그 군정 연장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박정희의 군정연장 획책“박정희의 칼 휘두름” 그것은 뜻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함석헌에겐 절대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함석헌이 박정희의 5·16을 얼마나 죄악시했는가는 박정희가 그 군사쿠테타를
기획특집
문대골 목사
2014.07.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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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는 이미 누누이 언급해온 것처럼 실로 엄청난 파고를 일으켰다. 한순간만이 아니었다. 1961년 7월호 사상계에 그 글이 발표된 후 그가 그 육을 벗고 유명을 달리하는 1989년 2월 4일까지 함석헌이 일으킨 파고는 꺼질 줄을 몰랐다. 적어도 함석헌을 통해 이후의 민중들은 ‘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 무서운 것은 ‘참에 사무친 혼’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박정희가 뽑아든 그 날 선 칼날 앞에서 “한마디 하자”며 천연(天然)히 내어놓는 그 한마디는 실로 무거운 것이었다. 그의 박정희
기획특집
문대골
2014.06.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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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중정(中情)에 연행되다함석헌의 글 ‘5·16을 어떻게 볼까’를 참 무거운 마음으로 7월호에 실어 내어보낸 장준하는 밤새 불안했고, 다음날은 군정으로부터의 폐간령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전 사원들을 요정 ‘대하’에 불러 모아 해산주(解散酒)를 ‘퍼마시며’ 온밤을 지새웠는데 그러나 다음날 아무 일이 없었다.‘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무사할 리가 없어….’ 천하의 장준하로서도 긴장감이 가실 수가 없었다. ‘사상계는 없어질 것이고, 선생님과 나는 투옥을 피할 수가 없을 거고….’ 장준하는 사장석에 앉아 깊은
기획특집
문대
2014.06.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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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 본지 창간 37주년 대담 인정과 칭찬 뒤로하고 죽음 각오한 회개 복음 전해야교회가 제 역할 하도록 선도하는 언론 사명 다해 주길 ▶ 들소리신문은 1977년 4월 3일 출발, 올해로 37주년을 맞았습니다. 당시는 경제 사회적으로 암울한 시대였고 민주화의 열망이 좌절을 거듭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들소리는 문서를 통해 직업청소년 계층을 위한 전도와 봉사에 주력하며 야학, 통신 강의록을 통한 교육을 병행하기도 했고, 교도소와 군부대에도 문서를 통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1988년 신문 정기간행물 자유화가 이뤄져 정식으로 신문으로
기획특집
양승록 기자
2014.04.2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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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절은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절기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의 계절은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스스로 연합하게 하는 절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교회가 현재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데, 이런 속에서 부활은 새로운 출발을 만들어가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절만이 부활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사회가 어둠(어려움)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데 부활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가 잃어버린 영광을 회복하는 불씨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연합은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것
기획
들소리신문
2014.04.1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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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죽음도 축복으로 알고 묵묵히 살아가는 신자들로 키워야돈 들여서 총회장과 대표회장 하려는 ‘욕심’, 이젠 그만 버리자목회인생 40여 년 가운데 20년을 청주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대훈 목사(서문교회). 교단(기성)의 국내선교위원장, 교회진흥원 이사장 등 교회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역할을 해왔고, 서울신학대학 대학평의회 의장으로서 북한선교와 후학들을 길러내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는 그와 한국교회 전반에 대해 논했다. 사순절 기간, 부활절을 앞둔 기간이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하기에는 버거워보이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기획특집
양승록 기자
2014.03.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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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중이 노했고, 일어났고, 이겼고, 기뻐했는데 그것이 혁명이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혁명은 어떤 것이냐? …우리도 자유를 사랑하고 정의를 위해 분개할 줄 알고,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림인 것을 증명하게 하여 전날의 실패와 상처를 도리어 자랑으로 여기고 세계를 향해 어엿한 얼굴을 들 수 있게 했으며….” (함석헌의 글 ‘4·19는 혁명이다’는 박정희의 군사반란 세력에 의해 ‘4·19혁명’이 ‘의거’ 심지어는 ‘사건’으로까지 폄하되는 데에 항의해 쓴 글이다. 필자주)함석헌과 장준하를
기획특집
문대골 목사
2014.02.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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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기억도, 해방 직후의 기억도 다 잊지 않고 가지고 있는데, 오늘도 그 지나간 때들과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시원한 운동이 없느냐? 두말할 것 없이 6·25 이후에 가 했던 사명을 수행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함석헌이 들은 영음(靈音), “있는 대로 말하라”함석헌에게 있어 1950년대 후반 5년은 정말 바쁜 기간이었다. 정치거나 경제거나 사회, 문화거나 가릴 것 없이 모든 부조리에 저항의 소리를 쉬지 않았다.“나더러 말이 곱다 밉다 말라. 글에 조리가 있느니 없느니 말라. 이 부조리를 깨고, 이 짙은 어둠을
기획특집
문대골 목사
2014.01.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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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사상계와 1956년의 함석헌1956년 1월 함석헌의 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발표한 이후 1960년대 사상계의 눈부신 확장과 함석헌의 글은 실로 묘한 랑데뷰(rendez-vous)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함석헌이 사상계에 등장한 것이 이미 알려진대로 1956년 1월인데, 그 전해 1955년은 사상계가 장준하의 1인 편집체제를 벗고, 단연 주간(主幹) 주재의 ‘편집위원회’ 체제를 선택한다. 소설가 김성한(金聲翰)을 초대 주간으로 하여 편집위원은 장준하 자신을 포함 엄요섭(嚴堯燮), 홍이섭(洪以燮),
기획특집
들소리신문
2013.12.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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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苦難)의 역사, 고난의 사람1958년 사상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로 연행, 구속된 함석헌은 20일 간의 수감끝에 풀려나오게 되는데, 함석헌은 이때 자신의 존재와 한국의 운명을 둘이 아닌 하나로 깊이 인식하게 된다. 이전 북에 있을 때나 자유의 땅이라고 믿었던 남으로 내려온 이후거나 자신과 한국을 언뜻언뜻 하나로 느끼곤 하는 때가 없지 않았으나 금번 필화를 입은 사건 이후엔 더욱 그랬다.함석헌이 자신의 일생과 한국의 역사를 동일시하게 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고난(苦難)’이라는 주제에 의해서였다. 그는 일
기획특집
문대골
2013.12.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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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목회자에게 묻다 / 유 경 재 목사(안동교회 원로)개인의 사변이 아닌, 조직신학·역사신학에 근거한 설교가 부족성장세는 ‘거품’ 확인, 사회 여러 부분에 대해 성경적 모색 절실 △한국교회가 30, 40년대에 비해 숫자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영향력면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인 게 사실이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한국교회 초창기에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어려운 고난을 이기고 이어져 오다가 해방기를 맞아 많은 혼란기가 있었지만 잘 견디어 왔다. 그 당시에도 신학적인 여러 논쟁으로 말미암아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있
기획특집
양승록 기자
2013.10.28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