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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로 자기 인생을 사신 예수처럼 오늘의 너와 나는 오직 십자가 죽음의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메시아 예수, 우리 인류의 구세주는 요한복음의 시각으로는 6장에서 따르는 자들에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면 너희 속에 생명이 있느니라”하신 말씀을 남기시고 곧바로 십자가를 향해 달음질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신 속도는 6장까지가 사실상 공생애 3년차이기 때문에 죽으시는 해이며, 11장, 12장 이후는 마지막 유월절 기간에 해당한다.이 같은 요한복음서의 지면 배열을 보면, 요한복음 저자는 예
22세기 대안
無然
2016.02.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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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밖에 인재를 기르지 못한 해당 교파(교단)와 한국교회 모두는 인륜과 한국인 모두 앞에 사죄하는 마음뿐이다.사람은 돌발적 위기를 만나면 당황하여 헤쳐 나갈 길을 놓쳐버리기도 한다.지난 번 부천에서 일어난 독일 유학파 40대 목사가 숨진 자기 딸을 방안에 11개월이나 방치했다가 경찰 수사를 받고 살인 혐의로 구속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뜩이나 사회의 시선이 차가워서 고심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청천병력이었다.어찌하다가 그 지경이 되었을까? 그 사람,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나약하고 또 자기 허물과 죄를 고발할 수
22세기 대안
無然
2016.02.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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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16세기였다. 곧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항의 반박문을 내걸고 개혁운동을 시작했다.그러나 이 종교개혁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현실이 되었다. 세월 속에서 개혁의 주체들이 변질하여 대다수가 반역자 집단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521년 루터와 쯔빙글리가 ‘변체설과 상징설’이라는 차이의 성찬론 시비를 가리지 못하여 결별한 이후 종교개혁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1530년대 제네바의 칼빈이 개혁운동에 뛰어들면서 활기를
22세기 대안
無然
2016.02.0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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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들이 기독교 개혁을 말할 때, 개혁정신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이름으로 일어난 1517년 10월 31일의 봉화는 그 대상이 로마 교황권 교회였다.지금도 우리(프로테스탄트)의 개혁 대상은 교황권이 지배하는 로마 가톨릭이다. 언제 하나님께서 로마교회에게 면죄부를 주었던가? 루터가 그토록 증오했던 ‘교황권’이라는 자리가 배단의 자리임이 여전한데 교회가 언제부터 로마 가톨릭의 지속적인 개혁을 포기해도 된다 하였던가? 우리는 개혁자로 부름 받은 전사들이다. 로마 가톨릭의 개혁, 그들 12억 명의 신
22세기 대안
無然
2016.01.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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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님! 96세의 노년의 나이에도 매주 2~3회의 강좌를 소화하시고 매일 필요한 집필을 왕성하게 하신다 하니 우선 기쁘고 존경스럽습니다.13살 무렵, 몸이 부실하여 계속 공부하기가 힘들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셨죠. 저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헌신하겠다 하셨지요. 저는 그 말씀을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받아들인 바 있었습니다.그런데 김 교수님, 지난 가을이다 싶은데 KBS-TV 아침 “울림”이라는 시간에 나와서 여성 사회자와 대담을 나누실 때 사회자가 신앙생활을 물으니 “교회에 안 간다
22세기 대안
無然
2016.01.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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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씩 눈여겨 보면 모래알 속의 보석들처럼 제법 큰 재목감들이 교회 안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 교회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인재, 곧 나라와 교회의 대들보가 될 만한 인재들이 섞여 있다.생각해 보라. 교회가 어디인가? 교회는 하나님 축복의 손길이 직접 미치는 곳이다. 미꾸라지들만 득실거리는 것이 아니라 가물치 같은 재목들이 가끔 섞여있음을 본다. 가끔이 아니라 많이 있다. 우리들이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서 그렇지 상상을 초월할 만한 큰 재목감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인물을
22세기 대안
無然
2016.01.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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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우주경영의 동반자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다. 너와 나는 물론 우리 모두는 우주의 창조적 건축자들이다.그러므로 값싼 소아주의나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서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관찰하라. 어떤 이들은 이 같은 생각을 과대망상증이라고 하고 싶겠으나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같은 세계관을 안고 태어났기에 더욱 겸손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단, 지극히 작은 소자들에 지나지 않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몸짓으로 하늘의 떠받치며 온 땅의 인류와 자연과 만물이 결코 허무한 데 굴복하고 싶지 않다
22세기 대안
無然
2015.12.2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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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톨 재산도 따로 챙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을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 자녀, 정확하게는 아들이다. 족보상의 자녀인 양자가 아니라 친 아들이다. 그래서 그 상속자요 유업을 이어갈 하늘나라 승계자이다. 이렇게 말했을 때 우리 마음이 벅차다. 세상에 이럴 수가, 어찌어찌해서 꿈에 떡 한 번 얻어먹었어도 감지덕지일 수 있는데 하늘나라 상속자라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이 사명을 받은 바울은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22세기 대안
無然
2015.12.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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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요 8:17~18).바울 선생이 이 글을 쓸 때 이 지상에 바울의 가슴 속을 압박하는 벅찬 사명에 공감할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이 글을 쓸 무렵 이전까지 아래와 같은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다.“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
22세기 대안
無然
2015.12.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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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폭도들을 IS(이슬람 국가)로 호칭하기가 싫다. 최소한 이슬람은 요즘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 각지에서 인간 도살에 열중하는 자들이 아니다. 어찌 인류사 현재 16억의 신도를 가진 종교가 사람의 목숨을 날파리 잡듯이 하는 자들을 포함할 수 있겠는가.나쁜 놈들! 나쁜 자식들! 이렇게 성질 나는 대로 내뱉기에는 어딘가 켕기는 부분이 있다. 어찌, 우리는 유대 이스라엘과 기독교의 모방이요 짝퉁라고도 하는 이슬람, 종교 문화사적으로는 우리들의 사촌일 수 있는 이슬람을 향하여 욕설을 함으로 우리의 소임이 끝났다 하겠는가.기독교는 중세
22세기 대안
無然
2015.11.2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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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제단(贖罪祭壇), 누군가에 의해서 또 나 자신을 통해서 발생한 이 세상의 고난과 두려움들이 어느덧 감당할 길 없는 한계 앞에 서게 되었다.인류사의 속죄제단은 일찍이 골고다 예수로 이루어졌으나 그것을 인류는 일과성 제단으로 처리(이해, 믿음)함으로 인류는 다시 한 번 메시아의 제단을 부르게 되었다.그 제단은 여기, 오늘의 현재 안에서 인류의 절박한 구원의 요청 앞에 다시 세워야 한다. 그 을씨년스러운 제단, 무죄한 예수가 발가벗은 모습으로 치욕을 당하며 죽어갔던 십자가!우리는 다시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 고난의 분량이 남아 있
22세기 대안
無然
2015.11.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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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는 로마제국과 기독교가 매우 안정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을 때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메카는 아라비아 10개 부족 중 우수한 계층인 쿠라이시 족 가문의 자식이었다.로마는 AD 476년 게르만의 장군 오토 아케르에 의해 멸망했으나, 보다 일찍이 AD 330년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신 로마 또는 동로마의 이름으로 제국이 재출발 했으니 비록 1천년 제국인 서로마가 망했으나 제국의 모든 시스템이 그대로 존속하면서 혈통만 라틴에서 게르만으로 바뀌었으니 조용할 수도 있었다.더구나 AD 590년 그레고리 1세가 로
22세기 대안
無然
2015.11.1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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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98주년을 상기하면서 꿈틀, 움찔하는 식의 미세한 자각증상을 보여주는 우리 한국교회의 영적 수준에 만족할 수 없다.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뜻으로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를 붙잡고 5백여년을 버틴 신학의 단순한 해석이 오늘의 기독교를 빈약한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이신칭의가 무엇인가? 로마서 4장 1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며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리라’에서 발전한 바울 선생의 논리가 오늘의 우리에게 ‘이신칭의’로 주어졌다.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 무엇을 믿
22세기 대안
無然
2015.11.0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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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개혁의 출발은 아라비아, 터키,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영토를 마음에 두고 그 땅들을 소유하고 있는 이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대속사 신학의 완전을 준비하는 일이다 1517년 10월 31일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신학적인 엄밀성으로 볼 때, 1525년 12월 취리히 쯔빙글리의 7제자들이 ‘재세례 선언’으로 제2 개혁기를 맞이했다.그러나 칼빈의 등장으로 조정기에 들어가면서 유럽은 제1, 또 제2의 종교개혁기가 병행 발전했다. 제1 개혁기의 ‘믿음의 의’마저도 후진국에서나 용을 쓰는 정도이지, ‘믿음’이라는 바울의 용어는 복합적 의
22세기 대안
無然
2015.10.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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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죽을 수 없는 생명, 생명이라는 말 하나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부활. 언어의 한계로서 부활이다. 한 번 죽는 절차를 밟게 되었으니 부활이라는 어휘가 절차상 나온 것이다.왜 한 번 죽는가? 에덴을 저버린 아담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처리과정이 필요해서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인간, 또 인간들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이치라 하였다. 반드시 한 번 죽는 절차인 믿는 자들의 십자가는 예수와 함께 죽는 십자가의 절차가 된다(갈 2:20).이 죽음의 절차를 ‘아멘’으로 통과한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와 하루 반나절 무덤에 머물렀
22세기 대안
無然
2015.10.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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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믿음으로, 라고 대답하기로 했다.믿음에서 믿음으로 가는 길에 내가 또 다른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다. 성경 해석상, 요한복음의 경우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예수의 시신 위에 기름을 발라드까 하여 무덤을 찾아 갔었다.그때 그녀는 무덤 입구가 열려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인은 베드로와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찾아가서 사실을 말했다. 그들도 무덤으로 달려왔다. 무덤 안으로 가서 거기에 예수의 시신이 없음을 확인했다. 예수에게 입혔던 수의인 세마포와 머리에 썼던 수건이 각각 따로 개켜 놓여 있었다. 그들은 무덤에
22세기 대안
無然
2015.10.0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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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주 예수의 은혜를 받은 나는 신구약 성경을 정독하기를 시작하여 구약을 읽고 신약으로 와서 마태, 마가, 누가, 후에 요한복음을 읽어가다가 11장 25절에 이르렀다. 그리고 예수께서 마르다와 말씀하시는 중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묻는 말씀과 만나게 되었다.이 무슨 말씀인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니. 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본문 안에 강조되어 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살아서 믿는 자는 죽
22세기 대안
無然
2015.09.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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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리 사람, 이라고 지목하여 불러본다.요즘은 너무 소음이 많고 언론이 혼선이 많아서 가능하면 최소화된 환경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다. 더욱 낮춰서 말이다.어느 누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그의 귀를 늘 땅바닥에 밀착시켜 귓바퀴 사이로 소음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無然’이라는 이름으로 독자편지를 쓰기 시작한지는 1970년도 부터다. ‘들소리 창업’예비단계 문서운동을 할 때부터 내면에 흐르는 예수에 대한 나의 열망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지면이다. 40년이 훌쩍 넘긴 세월의 날들 속에서 그래,
22세기 대안
無然
2015.09.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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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필요하다. 인물은 민족 또는 교회(하나의 교회)가 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 같은 탁월한 선지자를 내듯이 말이다. 하나님이 비록,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라고 하셨으나 그래도 야곱 가문에서 이룩한 이스라엘이다.야곱, 곧 이스라엘이 되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곧 산 자의 하나님 품에서 나온 이스라엘이다. 히브리가, 아브라함의 자식들이 어느날 이스라엘이 되어 민족과 나라의 어엿한 모습으로 끝끝내 메시아 예수를 내시사 세계사를 바르게 세우자 하신 뜻을 펴듯이 한국교회로
22세기 대안
無然
2015.09.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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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그 고난의 흔적을 내가 가졌노라, 했던 사람은 멋진 표현법으로 한 말이고 예수 십자가 앞에서 은혜에 감격하여 우는 자에게 주 예수는,“내가 널 대신 죽은 것을 믿느냐?”고 물으신다. 그 때 나는(당신은) “주여 그러하옵니다. 주가 나의 죄 된 인생을 대신하여 죽으셨나이다!”바로 여기까지를 고백하면 예수의 들릴락 말락 한 음성이 내(당신) 가슴 속에 들려올 것이다.“아들아(아무개야)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으니 너는 나의 남은 목숨의 날을 (네가) 대신하여 살아 주었으면 한다….”
22세기 대안
無然
2015.09.02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