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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따라 그의 제자 둘이 예수를 찾아간다. 예수 우리의 메시아는 인류 모두의 죄를 속량하시려는 속죄양 되어 십자가 죽음을 피하지 않았다. 이는 만유 회복, 이 세상에서 미움과 죄악을 청산하고 이 땅을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였다. 중세기 초, 기독교는 원치 않은 아라비아 복병을 만나 역사 위에서 투쟁 아닌 투쟁을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으나 이슬람은 본디 기독교의 맞상대가 아니라 사랑받아야 할 변방의 하비루였다. 21세기 현재 유럽의 양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5.01.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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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든 좋든, 옳든 그르든 한 문명종교의 교주이며, 1,400년 역사 속에서 16억 명의 신도를 둔 사람에게 만화 장난질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각오해야 한다.왜들 그렇게 속이 좁을까? 전체 인구의 8%가 이슬람 신자인 프랑스의 이슬람 정책은 점수가 너무 부족하다. 너그러움을 배워야 한다. 기독교는 하늘이다. 하늘은 천체의 중심에 있어서 아침 이슬과 밤안개를 뿌려주어 지상의 생명 가진 것들을 보호한다. 또 수 억 천 만…, 그 이상 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거느린 태양의 중심으로 표상하기에도 조심스러운 창조주,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5.01.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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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십자가 종교이다. 예수께서 인간의 한계 앞에서, 오직 불행한 인간들을 위하여, 마땅히 죄로 자기가 죽어야 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어주심으로 인류의 화평, 그리고 모든 범죄한 인류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어 내셨다. 그러나 이 법칙을 모르고, 또 외면하는 사단의 자식들이 오늘도 예수 우리의 구세주를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일전에 유럽의 중심국인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범들이 저지른 무자비한 학살에 의해 17명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유럽과 세계의 양심들이 분노하였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지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5.01.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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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 집, 내 집 한복판, 바로 내 심장 한복판에 사시는 날이 오늘이어야 한다이사야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 중에 임마누엘은 하늘에서 부르고 땅에서 화답하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 이는 예수에게서 응답이 이루어졌다. 처녀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곧 그 이름 그대로 인류의 메시아셨다. 그러나 그 정도만을 가지고는 임마누엘의 참뜻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람 되시다, 또는 사람과 함께 하시다 만을 가시고는 반쪽짜리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2.3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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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지막인 12월, 성탄절 절기를 맞아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마침 총신대 교회사 교수인 박용규(58)님이 쓴 ‘세계 부흥운동사’를 펴본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는 40년 동안 부흥이 정지 되었노라고 기록하고 있다.40년이면 1973년 빌리 그레함의 여의도 집회와 이듬해인 1974년 엑스폴로 74, CCC 중심의 여의도 대회가 있던 때였다. 맞다! 그때 한국교회는 갑절 이상의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교회 인구는 3백여만 명이었는데 1973년과 1974년 여의도 대회 후 한국교회는 6백만, 또는 7백만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2.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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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는 다시 만나야 한다. 로마교회는 10여 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그리스정교회, 이집트 콥틱, 앗수리안과 네스토리안 교회와의 화해를 시도했고, 지금도 여러 교파들과 화해를 이루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프로테스탄트 교단들과의 화해 시도는 현재까지 결실이 없다. 어느 천재가 나서서 조종을 한다 해도 장애물 제거부터 해야만 신·구 기독교의 만남과 화해가 가능할 것이다.1. 교황제를 없애라!교황제도는 성경에 그 근거가 없으며 예수께서 그 같은 꼼수를 가르치신 일이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포부는 우주적이기 때문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2.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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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초기 활동 8년(1517~1521)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교황’이라는 이름은 성경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천국의 열쇠를 쥔 사람 베드로를 초대 교황이라고 하면서 그의 뒤를 이어서 아직까지 교황권을 유지하는데 성경 어디에 베드로를 교황이라 했느냐, 또 성경 어느 부분에 ‘교황’이 있다고 했느냐? 그러므로 교황좌는 사탄의 자리다.도무지 타협 불가였다. 그러다가 1525년 독일의 농민반란의 극에 다다르게 되고 제후들이 도와달라고 그에게 요청하자 루터의 생각이 달라졌다. 물론 루터는 개혁운동 초기부터 폭력은 결코 용납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1.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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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직 갈 길은 하나다. 루터는 설마 했던 교황의 파문교서를 받고 그것을 찢어버렸다. 교황권 역사 속에서 교황의 교서를 의도적으로 찢어버린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루터의 신앙적인 주장에 대해 ‘이신득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루터가 “교황권 절대불가”라고 믿는 개혁자임을 알아야 한다.‘교황’이라는 괴물이 성경에는 없다.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를 비롯하여 어떤 사람도 교황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고집한 자들이 없었다. 그 이유는 루터의 주장과 선언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1.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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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우리 대한민국이 날마다 고민하며 기도해 오던 제목일 것이다. 북쪽은 요즘 들어서 아시안 게임 폐회식 참석을 명목으로 제2인자인지 12인자인지 모를 인물들이 제일위원장 전용기라는 구닥다리 비행기를 타고 와서 잘 해보자고 큰소리 치고 있다.무얼 어떻게 잘 해보자는 것인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뇌까리다가 갔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군사 분계선 금지 구역을 들어왔다 나갔다를 하다가 총 쏘는 연습인가를 하기도 한다.장난인가보다. 저들은 굶주리며 사는 60여 년 동안 인생이란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터득했는지 장난치기를 좋아
22세기 대안
들소리신문
2014.10.2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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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초기인 1517년에서 1525년까지 8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신·구 기독교는 자기 방향을 대강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루터나 쯔빙글리와 멜랑히톤의 합류 등으로 가톨릭의 몸통에서 문화현상을 일으키고, 개혁을 혁명 상황으로 몰고 간 농민반란과 토마스 뮌쩌 신부의 혁명에 루터와 영주들의 일관된 거부로 말미암아 독일을 선두로 북유럽 쪽으로 불붙던 교회의 개혁운동도 잠잠해져 갔다.루터가 그토록 아끼던 토마스 뮌쩌가 화형장 불꽃으로 사라질 때, 농민반란도 함께 끝나고 루터는 그해 1525년 6월 13일 수녀원을 뒤로하고 나온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0.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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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세계사적인 기독교 혁명이 조용히 일어났다.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붙여놓은 95개 조항. 특히 평범한 신자들과 다를 바 없는 ‘교황의 무오’, 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 교황이 신처럼 행동하지 말 것. 오류가 있는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할 수 없음을 지적해 주는 항의문은 로마교황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처음에는 찻잔 속의 미풍에 지나지 않은 듯 했던 개혁의 바람은 요원의 불길처럼 서·북 유럽으로 거세게 불고 있었다.어찌할꼬? 깃발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교황 세력들은 속수무책, 백방으로 묘수를 찾아보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0.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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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쉬운 날의 출국이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가끔은 즉흥적인 발언도 하는 분위기이기에 꼭 이 한마디는 남기고 떠날 줄 알았었다. ‘한반도 대한민국에는 교황의 신민일 수도 있는 로마가톨릭 신자가 500만 명 살고 있으나 일찍이 1517년 10월 17일 기독교 혁명으로 탄생한 프로테스탄트인 기독교 신교 신자들이 1천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이다.’그런데 가톨릭 신자의 갑절이나 되는 교황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1천만 명이나 살고 있는 나라에 와서 한마디 인사도 없이 떠난 것은 무례요 무능일 수 있다.로마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10.0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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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 고집, 또는 떼법이라는 말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모여서 무조건 밀어부치는 행위다. 도무지 당할 재주가 없다. 서울광장이나 광화문 거리에 장막을 두르고 앉아서 죽기 살기로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사람들이 쉴날이 없이 장날을 이루고 있다. 어려움이 있고, 쉽게 길이 열리지 않을 때 떼를 쓰면서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야 하는 때가 있다.예수님이 예루살렘 길을 잡고 가실 때, 여리고 길을 제자들에 둘러싸여 가고 있을 때 떼 쓴다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한 명의 거지가 예수의 길을 막아서서 외친다. 나사렛 예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09.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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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데스탄트 이름의 종교개혁 신앙자들이면 가톨릭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으라. 그래도 한때는 함께 유럽시대를 살았던 일이 있는 기독교 신교가 12억 가톨릭이 미신과 야만종교 노릇을 하면서 죽어가는데 어찌 보고만 있으려는가?이슬람 권에 나가서 선교하는 한국교회 선교사들은 대개 그들의 현장에서 목숨을 건다. 무슬림이여! 주 예수께서 너와 너희 대선지자 무함마드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사셨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대속죄의 주 예수를 믿지 않으냐, 하면서 매우 당당하고 때로는 목숨을 건 투쟁적 선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그 결과 무슬림 나라에서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09.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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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그가 섬기는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일명 95조항의 반박문을 내걸었다. 그의 반박은 그의 몸 중의 몸으로 여기는 로마 가톨릭을 향한 애정어린 충고였다.그는 어느 누구와 함께도 아닌 그 혼자만의 결의로 반박문을 걸었는데 제1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였고, 제 95항은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평화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많은 고난을 통해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여
22세기 대안
편집부 기자
2014.09.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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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도, 방향도, 목표도 없는 그런 단체를 누가 필요로 하겠는가.아주 꼴사나운 모양새가 될 바에는 차라리 사라져라.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이 중도 사임하고 새로운 팀이 한기총을 이끌어줄 것 같다. 홍 대표회장의 사임이 어느 만큼의 흐름을 일구어낼지 기대가 있다. 그렇다고 한기총 대표회장이 중도하차했으니 한국교회연합(한교연)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한기총과 한교연이 하나를 둘로 쪼갠 당사자들이니까 가능하다면 둘이 다시 하나가 되어 준다면 고맙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뭉치든지 헤어지든지가 문제는 아니다. 참된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08.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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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우리들 스스로 품위를 가다듬고, 이웃을 보살필 줄도 알고, 슬픔을 당한 자들을 위로할 줄도 알게 하라. 하루 속히 천하 만민의 칭송을 받을 수 있는 몸 가꾸기를 서두르라.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사 40:1~2) 인간이 지닌 근원적 죄악을 해결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요 그 감격의 선언이다.상호 파문을 끝내고 용서를 받으라. 광복절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08.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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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교황의 한국 방문이 통일 대한의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예비 작업이 되어줄 것으로 믿고 싶다. 모처럼 국빈 대접을 받으며 한국 땅에 오는 교황 프란치스코 1세는 그의 여러 행사 중 기독교 신교의 대표적인 교회나 순교사적지 또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상견례를 나누는 여유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그러나 아직도 기독교 구파인 가톨릭과 신파인 기독교 사이에는 50여년 단절에 따른 반감을 극복하지 못했을까. 가톨릭이 못하면 기독교 신교인 한국교회가 교황의 일정 중에 노령의 여행자를 대접하고, 또 가톨릭을 대신하는 그에게 드리는 예를 갖출 수
22세기 대안
편집부
2014.08.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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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기독교(신교)가 로마 가톨릭을 향해서 ‘가톨릭은 이단이다’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 요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지적이었다. 그런데 교황 프란시스코 1세가 8월에 한국에 오기로 확정된 후에는 교회들의 가톨릭 비판론이 매우 거세졌고, 논리를 맞추어 조직적 대응하고 있음을 본다.로마 가톨릭은 이단이다, 라는 단정은 바로 오늘이 세상 심판의 날일 경우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의 심판은 유예된 채 가톨릭이나 기독교가 서로 허물없는 자세를 가다듬기를 요구하고 계신다.기독교 개혁세력은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의
22세기 대안
편집부 기자
2014.07.3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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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이단의 세례를 받고 태어난 기독교는 ‘이단’이라는 용어에 매우 익숙하다. 서둘러 이단이라 정죄하고 스스로가 불편해서 또 안타까워한다.요즘은 기독교가 작심하고 큰 이단을 하나 발견했다. 그동안 함께 대한의 토양에서 살면서 ‘이단 호칭’ 단계까지는 삼가면서 살아오던 로마 가톨릭과 기독교(신교) 간에 드디어 감정의 단계에 다다르고 있다.시비를 비껴갈 수 없는 교리적 차별성을 갖고 있는 신·구 기독교 간에 드디어 시비와 논쟁의 단계에 이른 것 같다.차라리 잘 되었다. 기독교 역사 과정을 1517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차별성
22세기 대안
편집부 기자
2014.07.24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