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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절박하고 간절한 시기에 “들소리”가 한국교회나 나라의 어려움에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부끄럽다. 그저 인간이란 별 수 없는 것인가, 내가 여기 있기에 주변이 조금은 밝았으면 했으나 아우성치는 이들의 비명을 들으면서 속수무책이네.”들소리니까 이토록 혼탁할 때 한 수 보여줄 수 있어야지”라고 말하는 이들의 요구 앞에 유구무언이면 헛살았네요.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나 정직하게 살았으면 당당해야지 궁상을 떨기만 하면 용서되는 것 아니죠.힘이 들기는 하지만 다시 한 번 힘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하
사설
논설위원
2019.08.1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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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노의 편에 서지 말자. 지난날 너무 허술한 조건들 속에서 일으킨 한국교회의 기반은 얼마간의 취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뼛속까지 썩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현역 그리스도인 중심으로 볼 때 40-50년 정도의 방황이면 좋은 스승 만나고 배우면 바울이나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동승할 수가 있다.현재, 위기가 찾아오기는 했으나 다행히 히틀러나 스탈린만큼 한 수준은 아닌 것 같으니 크게 괘념치 말고 좌우를 양수 겹장으로 물리치고 한반도 중심 대한민국의 앞날에 자유 민주와 인권의 나라, 세계 평화의 길목을 어둡게 하는 중국을 견
사설
논설위원
2019.08.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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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른 정치이야기 싫다. 정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정치로 말하면 사설자도 10단은 더 되는데 지면이 지면인지라 더는 말할 수 없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예수의 자식들이여! 올 여름은 일본도 가기가 조심스러우니 강원도 산골, 무주구천동 등 심산유곡을 찾아가서 목청이 찢어지도록 주님 이름 부르면서 기도하자.우리 신자들이 얼마냐? 우리가 엎드려 기도하면 설악산 울산 바위가 그 기세에 눌려 거제도 앞바다까지 날아가서 제2의 독도를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하자. 무슨 말을 더하랴. 가진 자들이 삼권을 다 요구하고, 그것 손에
사설
논설위원
2019.07.3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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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과의 충돌이 극심해지고 있어서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는 물론, 우리 기업들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은 최소한 임진·정유왜란 때부터 4백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못된 짓 많이 했다. 더 정확하게는 백제, 고구려, 신라 때부터 왜놈, 왜구들 수준의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에 죄 많이 지었다. 그래서 금번 3.1운동 백주년 때부터 정부가 한 여러 가지 이슈들(사실은 박수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그러나 치고 빠지기를 잘 해야 한다. 엉켜 붙어 휘말려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지금 시간부터는 출구 전략이다.
사설
논설위원
2019.07.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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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교회가 부자승계를 “세습”이라는 기피용어를 들이밀면서 시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교회 밖에 없다. 한국적 이 시비는 교회론의 후진성 때문에 등장한 도덕률의 일환이다. 꺼림직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성교회와 통합교단은 원점회귀로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원점회귀라 함은 통합 교단의 세습방지법에 저촉됨에도 세습한 것이 지난해 정기총회에서 문제가 되어 총대들이 “법 준수”로 결의, 명성교회의 세습에 제동을 걸었지만 지난 7월 25일 노회에서 명성교회측 인사들이 노회 임원으로 단독 추천, 일괄 선출된 것이다. 교단 산하 노
사설
논설위원
2019.07.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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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공산당 정권이 싫어서 삼팔선 휴전선을 뛰어넘었던 북한 그리스도인들이 생존해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그 사람의 손자가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때에 또 피난을 갈 수야 없지 않느냐고 허탈해 하는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참으로 난처하고 안타까워서 뭘 그 같은 상상을 하시느냐고 해보았으나 그는 그거야 모르는 일 아니냐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다. 그것은 쫓기는 자의 삶을 경험한 사람의 체험일 뿐, 현재 대한민국에서 신자이기에 살아갈 곳 걱정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우리는 예수시대부터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누스가 권력 교대를 했던 시
사설
논설위원
2019.07.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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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 따라서 외국 가지 않고 우리나라 각 지역, 일과 휴식이 가능한 공간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좋다. 평소 개인별 생활이 많다보니 단체 모임을 필요로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수십 명 이상이 움직여도 그 안에서 소그룹별 행동을 병행하게 되면 두 가지 장점을 경험할 수 있겠다.지도강사나 그룹 리더가 있을 경우는 “묵상 체험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이다. 힌두들의 요가 행에 뒤지지 않을 묵상과 수련을 함께 하면 좋다. 묵상이면 기도의 한 형태이고 수련은 한국 고유의 “택견” 같은 정신건강법을 응용하는 것 말이다.학생이
사설
논설위원
2019.07.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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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으나 어느덧 매우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북간 문이 열리려 하고 있다. 겨울 잠자던 곰들이 아직은 봄이 아닌데 했으나 그들이 숨어들어 겨울잠 자던 엄폐물들이 돌발적으로 걷어치워지니 하는 수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듯이 말이다. 뱃속에 저장된 영양소가 아직 남아있고, 근육도 풀리지 않아서 걷기도 불편하지만 이제는 마지막 냉전기 장막이 걷히려 하고 있는데 어찌하는가.어울려서 살아야 하는 사회 속에서 따로 놀 수도 없어서 조심스럽게 몸짓을 해보지만 아직은 서툴기만 하다. 때 이른 몸짓들이기는 하지만 조심조심, 사고는 내지 말고 적응을
사설
논설위원
2019.07.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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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사람은 당신들뿐이요. 우리에게는 지도자 없소. 크고 작은 교회당에 모여 살면서 목자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생활하지만 한국교회는 아직도 디베랴 호수 건너편 유대광야 주변을 떠도는 목자 없는 양떼들이 훨씬 더 많소.목사 안수 받아 50년이 되었으나 삯꾼은 물론 너는 내 제자라는 자신 있는 말 어느 한 사람에게 아직도 못하고 있소만 우리들 주변 사방에 미친 늑대나 들개들이 또아리를 틀거나 진을 치고 있으나 목자들이 경계심으로 우리를 지켜줄 낌새가 보이지 않소.아뿔사! 사실은 목자가 우리 안에 있지요. 구약은 양과 목자가 각기 따로
사설
논설위원
2019.06.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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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으로 달려가서 무조건 금년 말까지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구약 예언자들 유사한 발상은 그 절차과정에 서투름을 노출하였다.그런데 한국교회 지도자 모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모여서 그를 규탄하고, 그가 한국교회를 대표하지 못하는 단체의 인물이고, 정치가 좋으면 목사직에서 물러나서 정치하라, 또 느닷없이 디트리히 본회퍼 찬가를 부르면서 감히 너 따위가 본회퍼 짝퉁 노릇을 하려드느냐는 호통을 보면서 마음 깊이 슬프고 부끄러웠다.그 보다는 당신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기총 이름, 교계의 이름은 피해 달라, 당신을 따르는 정치지향의
사설
논설위원
2019.06.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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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에 북조선 김일성 세력의 야욕이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한반도를 3년 동안 초토화시켰으며, 1천만 명을 뛰어넘는 사상자를 냈으며, 고아와 과부 무한 양산은 물론 참으로 무시무시한 참극이었다. 더불어 미국을 포함한 16개국 참전 유엔군의 희생자도 십만 명은 더 되지 않았을까?그런데 북조선과 중국 전범자들은 모든 증거가 말해주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전쟁에 대한 책임은 지려하지 않는다. 공산당은 기본적으로 거짓에 기초한다. 온갖 속임수와 억지를 부리면서 아직도 적화통일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남북 간의 긴장완화 좋기는 하지만 대한
사설
논설위원
2019.06.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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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을 정교분리로 해석한 로마식 기독교의 교리인데 기독교인들이 저마다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정치적 행동으로 20세기에 독일과 인도의 두 형식이 등장했는데 히틀러에게 저항했던 디트리히 본 회퍼 식이 있고, 또 하나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이라는 두 형식이 있었다.한국식은 비분강개 식 또는 실력 없는 자들, 특히 수구적 보수파 기독교의 회피형 정교분리도 있다. 정교분리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자유령(313년) 또 데오도시우스 제국의 국교령(392년) 무렵부터 순수한
사설
논설위원
2019.06.1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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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 일간지에 은퇴 신학교수 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대속자 그리스도는 예수 이전의 구시대의 유물”이라 하여 유대 이스라엘의 전승을 예수께서 친히 선택한 대속론인데 이를 낡은 시대의 유물이라 하였고, “예수는 로마 압제에 저항하다 정치범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로 결론내리고 있었다. 신구 기독교 역사 속의 십자가 신학의 핵심을 다루기에는 한정되고 편향될 수도 있는 수준인지라 크게 시비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대판형 신문 한 면을 다 사용했기에 작은 지면도 아니다.원로교수의 이 같은 내용은 18세기 말
사설
논설위원
2019.06.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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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과 부교역자 문제 시비는 한국에만 잠시 있는 일이다. 유럽, 중남미, 미국 등의 교회에는 이따위 시비 없다. 가서 경험해 보라. 다만 한국적 현실일 뿐이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10년 쯤 뒤부터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정·치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한국교회 식 “헌신 페이”, 동남아에서도 없는 부교역자 하인부리기 식이 한국에는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10여 년 지나면 없어진다.10여 년 후부터는 대교회 식 목회가 사라지고, 교회는 담임목사부터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풍토가
사설
논설위원
2019.06.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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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모 교단 신문에 교단 산하 신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보도 내용 끝에 혹시, 각 지교회 세례교인비(일종의 주민세) 납부 문제로 신자 숫자를 줄여서 보고했을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설명까지 있었다.이 기사를 읽으면서 참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세례교인비가 신자의 양심을 괴롭히는구나. 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신자 숫자에 맞추지 말고, 상회에 납부하는 비용을 지교회들이 적정선에서 결정하게 하면 어떨까. 아니면 신자 숫자대로이면 주민세 내듯이 총회나 연회(노회), 지방회 별로 신자 고유 번호를 정하고 고지서를 행하고 개별적
사설
논설위원
2019.05.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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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달라져버렸다. 전에는 휴전선이 막혀 있었으나 이제는 열렸다. 조금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현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일상화시켜버린 이상 현 정권 이전의 방법으로 좌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대접할 수 없다.악성 사회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날 수 있고, 판문점 판문각에서도 만날 수 있다. 때가 되면 민간기구들과 북한의 유사기구가 북한 땅에서도 만나게 되어 있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신념과 실력으로 대응해야 한다.사실 공산당이라는 것이 러시아 혁명기의 레닌과 스탈린, 북한 김일성 스타일 정도가
사설
논설위원
2019.05.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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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화 된 “믿음 타령”은 이미 미신이 다 되어버렸다. 그러기에 예수 말씀하시기를 “나무는 그 열매로”라 하셨으니 새겨듣고 믿음의 길을 온 몸으로 살아가야 했다. 행위 열매 없는 믿음이라는 고백으로 자기 신앙을 바르게 붙잡지 못했다. “개독교” 이름으로 교회를 욕보이는 사람들의 주장을 되새겨 보라. 거기에는 앙꼬 없는 찐빵이 있듯이 믿음의 열매가 없는 신자들의 신앙을 무섭게 비웃고 있지 않던가.소나기는 피하고 본다는 말이 있다. 교회는 오늘의 사회 현상이 장마철 홍수이기를 소원하면서 신앙의 정직한 도리를 되찾기 위해서 체계적인 노력
사설
논설위원
2019.05.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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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 거슬러서 조선왕조, 그 이전까지 생각해 볼 때 남북 간의 문제는 상당한 깊이 있는 의미가 있다. 지정학적 구조만 아니다. 온 세계인이 이상사회를 향해 줄달음치는 20세기 중턱부터 80여년 가까이 분단 세월, 남북한의 관계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다.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남북문제 해결사로 이 땅에 뒤늦은 때에 기독교를 파송한 것이라 했을까.도대체 언제까지 남북한 간의 대립과 불안으로 살아야 하는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제 학교에 다녀왔는데 오늘 아침 학교를 향해갔더니 간밤에 학교 건물이 모두 타고 없어졌다.
사설
논설위원
2019.05.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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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설치다가 겸손하지 못한 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 믿음에 대한 표현을 똑바르게 하지 못해서 신앙을 제대로 못 배운 자가 되기도 한다.요즘 교회 주변에 송사가 많고, 특히 서울교회나 사랑의교회 사태도 사실은 양측 당사자들이 서로 잘났다고 설치고, 조금 더 감정이 깊어갈 즈음에는 서로 낮출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세상 법정으로 갔다가 망신당하고 신세 망치는 사태로까지 발전한다.교회 안에서 신자와 신자 간의 분쟁을 개인이나 집단이나 간에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거나 끌려가는 단계에 이르거든, 즉시 “거기서 멈추라!” 교회의 재산,
사설
논설위원
2019.05.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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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교리적 맹점이 있다. “믿습니다”의 확대가 마치 예수의 경지에 도달이라도 된 듯이 착각하는 부분이다. 또 “믿고 천당”이라는 전도문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순간 기적처럼 천당과 지옥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 양 오만스러운 신자의 모습에서 당황하게 된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신자를 “용서 받은 죄인”이라고 표현하여 신자가 신앙의 내면 성장 과정을 설명하려 든다. 그런데 여기에 또 문제가 있다. 단계적 신앙을 말하려 들다가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는 것 아니다”면서 목덜미를 잡으려 한다.바로 여기에 “언어의 한
사설
논설위원
2019.05.14 17:33